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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4당 5락이라는 거짓말(3)

by 권승호

“충식이뿐 아니라 아이들이 많이 졸아요. 충식이는 그래도 다른 아이들보다는 적게 조는 편이지요. 엎드려 자는 일도 어쩌다 한 번씩이고…….”

“그래요? 우리 충식이는 수업 시간에 졸려서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그러고 보니 엎드려서 자지 않는 것은 정신력 때문이었고, 실제로는 잠이 오는 것을 참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학교에서 졸거나 자는 학생이 많아요. 깨워도 다시 자지요,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도 적지 않습니다. 20년 전에는 거의 없었는데……. 방금도 수업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면서 교실을 들여다보았더니 반에서 대여섯 명만 제외하고 모두 엎드려 있네요. 부끄러운 상황이고,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정말이에요? 짐작은 했지만, 그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속상하네요.”

“저도 일찍 잠을 자야만 학교에서 맑은 정신으로 공부할 수 있고, 집중해서 공부하지 않겠느냐면서 여러 차례 빨리 자라고 하였는데도 아들이 말을 듣지 않고 날마다 늦게 자네요. 해야 할 공부가 남아 있다면서요. 그런데 언젠가 보니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더라고요, 글쎄.”

“공부한다고 말하고서 부모님이 주무시는 걸 확인한 다음에 컴퓨터 게임을 하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아이가 충식이뿐만이 아닙니다. 대부분 아이가 스마트폰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지요. 아이를 믿어주시는 것은 좋지만, 다른 말은 다 믿더라도 공부해야 하기에 늦게 잔다는 말만큼은 믿지 않으셔야 합니다. 설령, 공부를 위해 늦게 잘지라도 그것 역시 어리석은 일이고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지요. 다른 것은 용서해도 좋지만 늦게 잠자는 것만큼은 용서하시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충식이에게 분명하게 말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밤 11시 이전에는 반드시 잠을 잘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11시 이후에 하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라 낮에 자기 위한 어리석은 행동일 뿐임을 아셔야 합니다. 다른 일은 양보하시더라도 이 일만은 양보하시면 안 됩니다.”

“공부하는 것도 안 된다고요? 잘못이라고요?”

“물론이지요. 절대 안 됩니다. 잘못입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게 되면 다음 날 낮에 학교에서 반드시 졸거나 자야 합니다. 인간이니까요. 아무튼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은 큰 잘못이고 어리석은 일인 것 분명합니다.”

“……”

“왜 잘못인지에 대해 비유를 통해 말해보겠습니다.”

라고 말한 후 종이를 꺼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시속 70㎞× 8시간 = 560㎞


시속 10㎞×16시간 = 160㎞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어요?”

“...........”

학생이라면 대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지만 학부모님에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시속 70㎞로 달리면 8시간만 달려도 560㎞를 갈 수 있지만, 시속 10㎞로 달리면 16시간을 달린다고 하더라도 160㎞ 밖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시속 70㎞와 시속 10㎞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하! 알겠어요. 시속 70㎞는 맑은 정신, 시속 10㎞는 흐리멍덩한 정신이라는 뜻이지요?”

“맞아요. 맑은 정신으로 집중하여 8시간 공부하는 것이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16시간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만…….”

“공부하는 학생에게뿐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아니 어떤 동물에게도 충분한 수면은 꼭 필요합니다. 음식만 에너지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잠 또한 에너지를 만듭니다. 먹을 것을 충분하게 먹지 못하면 영양실조에 걸려 건강을 유지하지 못하고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에너지가 부족하게 되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 거지요.

잠을 충분하게 잔 아이들이 잠을 설친 아이들보다 수학 문제를 세 배나 잘 푼다는 말이 있습니다. 피천득 선생님께서도 잠을 못 잔 사람에게는 풀의 향기도, 새 소리도, 하늘도, 신선한 햇빛조차도 시들해진다고 말한 바 있고요. 잠이 보약이라 하였고, 잠이 약보다 낫다고 하였으며, 미녀는 잠꾸러기라고도 하였습니다. 잠 앞에 장사 없다는 말도 있고, 세상에서 가장 큰 고문은 잠재우지 않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요.”

“저희가 학교 다닐 때는 수업 시간에 조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는데…….”

“예, 그렇지요. 어머님 학교 다니실 때만 해도 스마트폰, 컴퓨터 게임, 전자기기 등이 없었고 텔레비전도 밤 12시 이전에 끝났으니까요.”

“……”

“……”

“그중에서도 스마트폰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스마트폰이 그렇게도 문제인가요?”

“스마트폰이 아이들을 잠 못 자게 만들고, 그래서 아이들이 낮에 잠에 취해 있지요. 유튜브, 게임, SNS. 아시지요? 아이들은 밤에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고 메시지를 주고받느라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합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대화 내용이 쓸데없는 잡담이면서 수준 이하인 것도 문제이지만요. 언어폭력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고 갈등을 유발하는 것도 문제고 게임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문제지만 수면 부족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아이들의 집중력을 빼앗고 아이들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도 문제이지요. 아침에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출근하면서 학교에 빨리 온 아이들을 보면 일부는 잠을 자고, 일부는 공부하지만, 대다수 아이는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조회를 위해 교실에 들어오기 전까지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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