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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4당 5락이라는 거짓말(2)

by 권승호

“선생님, 그럼 저녁형 인간은 어떻게 해요? 저녁형 인간은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건가요?”

라고 물어왔다.

“선생님이 이야기했지, 선생님은 아침형 인간 따로 있고 저녁형 인간이 따로 있다는 그 이론, 엉터리라고 생각한다고.”

“선생님! 저는 받아들이고 싶은데요. 저는 진짜 저녁형 인간이기 때문이에요. 밤에 잠이 오지 않고 정신이 또렷또렷해요.”

“그래? 그러면 낮에는?”

“낮에는 잠이 와요.”

아이들은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었고 책상을 치는 아이도 있었다. 민혁이는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었는지

“저도 밤에 자고 낮에 공부하고 싶은데 그게 안 돼서 그래요. 저녁에는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데, 그럼,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민혁이 너도 밤에 자고 낮에 공부하고 싶다는 거지?”

“네. 그래요. 선생님!”

“그렇구나. 선생님이 방법을 알려줄게. 잘 들어.”

민혁이는 평소 수업 태도와 다르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선생님이 말이야,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를 했었단다. 훈련병들을 훈련시키는 조교.”

“선생님이 조교였다고요? 아닌 것 같은데요……선생님 인상이……”

“조교는 무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니야. 조교는 ‘도울 조(助)’ ‘교육 교(敎)’로 교육을 도와주는 사람이야. 무서운 사람, 때리는 사람, 고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다면 선생님은 조교로 딱이네요.”

“선생님을 인정해 주어서 고맙구나. 그때 모두 합하면 2천 명 정도를 훈련시켰던 것 같은데 저녁에 잠이 오지 않는다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 없다. 그것도 밤 10시. 밤 10시에 취침 점호를 한 다음에 자도록 하였는데, 대부분 2분도 지나지 않아 모든 훈련병이 깊은 잠에 빠져들더구나.”

“낮에 힘들게 훈련했기 때문이지요? 선생님!”

말하기 좋아하는 종훈이였다.

“그래, 그리고 하나 더, 아침 일찍 일어났고 낮에 졸거나 자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

그럴 수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이 반절쯤 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그때 저녁형 인간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저녁형 인간은 없어. 자신이 저녁형 인간으로 만들었을 뿐이지.”

“……”

“그래서 부탁한다. 너희들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니 평생 자신을 아침형 인간이라고 생각하라고. 아침형 인간으로 몸과 마음을 바꾸라고. 하느님은 말이야, 낮에 일하고 밥에는 쉬어야 한다고 명령하셨어.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현명함이야. 그리고 시험이 낮에 치러지는 관행을 깨부숴 밤에 시험을 치르게 할 능력이 없다면 아침 시간에 머리를 맑게 만들어야만 하잖아,”

“선생님! 아침형 인간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사람이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3주 정도가 필요하단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최소 3주를 꾸준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지.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절대 졸거나 자지 말아야 해. 몸을 피곤하게 만들면 더더욱 좋지. 중요한 것은 밤에 아무리 잠이 오지 않더라도 11시쯤에는 반드시 침대에 누워야 한다는 사실이야. 잠이 오지 않더라도 절대 일어나지 말고 침대에 누워있어야 해.”

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몇몇 아이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깨울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졸지 않는 대다수 학생에게 피해를 줄 거라는 생각, 시간을 낭비라는 생각, 깨워놓아도 또 잘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못 본 척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수업이 진행되는 오전 시간, 시험이 치러지는 오전 시간, 출근하여서 열심히 일해야 하는 오전 시간에 머리를 맑게 만들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야. 비몽사몽(非夢似夢)한 상태로는 자기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여 제대로 공부 잘할 수 없고, 시험도 잘 치를 수 없으며, 일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지. 스포츠 중계를 볼 때 중계 아나운서나 해설자들이 선수들의 컨디션 문제를 많이 이야기하지? 그런데 컨디션은 운동선수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란다. 운동선수보다 머리를 쓰면서 공부하는 학생에게 더 중요하지.”

“저녁에 공부가 더 잘 되는 사람은 평소에는 저녁 늦게까지 공부하고, 시험 보기 전날에만 빨리 자는 것은 어떤가요?”

말하기 좋아하는 승원이가 사뭇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평소에 2시에 자다가 시험 전날 11시에 침대에 누우면 잠이 올까 오지 않을까? 오지 않는단다. 설령 잠이 들었다 해도 숙면할 수 없지. 그리고 그동안 계속 오전에 졸거나 잤기 때문에, 오전 시간에는 졸리거나 머리가 맑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란다.”

“그러니까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그리고 시험을 잘 보고 싶다면 평소에 빨리 자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그죠, 선생님?”

평소에 말하기 좋아하는 현호가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말을 하고 싶어서였는지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충분한 잠이 보약이고 충분한 수면이 공부를 잘하게 만드는 비결이야. 거듭 말하지만, 운동선수보다 공부하는 학생에게 컨디션은 더 중요하다. 충분한 수면은 누구에게나 컨디션을 좋게 만드는 보약인 거야.”

“선생님, 그런데 ‘4당 5락’이라는 말 있잖아요. 그러면 이 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요?”

“틀린 말이다.”

창문이 흔들릴 만하게 아이들은 한꺼번에 웃음을 터트렸다. 웃지 못하고 있던 찬기가 영성이에게 4당 5락이 무슨 말이냐고 묻자 더 큰 웃음이 교실을 진동시켰다.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말 중 진실 아닌 말도 많은데, 요즘은 이 말을 가짜뉴스라고들 하지. 4당 5락이라는 말 역시 진실 아닌 거짓말, 틀린 말, 엉터리 말이다.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1~3%의 ‘쇼트 슬리퍼 (short sleeper)’에게는 옳은 말일지 몰라도 99~97% 사람들에게는 해당 없는 이야기인 거야. 100명 중 98명은 7시간 이상 자야만 제대로 활동할 수 있어.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당 5락이라는 말은 엉터리 말이고 가짜뉴스이니까 무시하는 게 좋아.”

10반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면서 9반, 8반, 7반, 6반의 교실을 훔쳐보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들 대다수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안타까움을 안고서 교무실에 들어서니 학부모님 한 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충식이 어머님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 우리 충식이가 수업 시간에 졸려서 공부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요. 하루 잠은 몇 시간씩 자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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