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이 없다. 책상 위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서른 권 넘는 책이 있는 사물함에도 국어사전은 없다. 인터넷으로도 국어 어휘를 검색하는 모습을 만나기 힘들다. 뜻도 모르면서 그냥 읽어간다. 모르면서도 넘어간다. 글자 읽는 일을 독서라 착각한다. 문맥을 통해 자기 마음대로 짐작하고서 지나간다. 사전 찾을 시간이 없다면서, 귀찮다면서.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 수 없다는 속담을 모른다. 영어 어휘 중요한 줄은 알면서 우리말 어휘 중요한 줄은 모른다.
실학자 홍대용은 ‘여매헌서’에서 “책을 볼 때에는 마음속으로 그 문장을 외면서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하여 찾되 주석(註釋)을 참고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궁구(窮究)해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주석(註釋)은 지금의 사전(辭典)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컨도 그의 저서 ‘학문의 진보’에서 “책이란 넓고 넓은 시간의 바다를 지나가는 배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여기서의 책은 세상의 모든 책을 이야기한 것이겠지만 그중에서도 ‘사전’이 첫 번째가 아닐까?
“쓴 것이 약”이라고 하였다. 당장은 싫거나 달갑지 않지만 실상은 그것이 도움이 되거나 좋은 교훈이 됨을 일컫는 말이다. 국어사전을 가까이하는 일이 당장은 귀찮을지 몰라도 결국은 지식의 원천이 되어 머지않은 훗날에 무엇보다 확실한 보약(補藥)이 되는 것임을 믿어야 한다. 국어사전 없이 공부하겠노라고 덤비는 것은 창도 방패도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임도 알아야 한다.
언어는 글쓴이와 독자와의 약속이며 의사소통의 도구이다. 그렇기에 어휘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것은 사회적 약속 이행의 첫걸음이면서 학습의 기본이다. 어휘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어사전을 찾아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백과사전도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스튜디오 안에 책이 달랑 한 권 있었다. 국어사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