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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용 Jan 27. 2020

포옹력을 키웁시다

때론 미약한 포옹이 가슴에 흔적처럼 남는다

"걱정 마. 안으면 안을수록 더 좋아질 거야."

언젠가 친구 해나(Hannah)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국외대학 교환학생 자격으로 생전 처음 미국 LA로 갔을 때였다. 나는 커다란 백인 친구들과 서로 껴안으며 인사를 건네는 게 어렵고 어색하다고 그녀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 한국에선 생소한 인사법인 데다가 이성 친구들과도 서슴없이 포옹을 하는 게 왠지 부담스럽게 느껴졌달까.


그 뒤로 해나는 일주일에 서너번씩 내 기숙사 방으로 찾아와 나를 안아주었다. 때로는 혼자서, 가끔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한낮이건 늦은 밤이건 상관하지 않고. 덕분에 어색했던 포옹은 점차 자연스러워졌고 낯설었던 미국은 조금씩 살아볼 만한 나라가 되었다.


어떤 기억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찾아온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LA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한 건 어쩌면 포옹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해나는 만날 수 없었지만, 그녀의 도움으로 나는 누군가와 부둥켜안는 것을 즐길 수 있게 됐으니까.


짧다면 짧을 9박 10일간의 여행이었지만 참 많은 미국 친구들을 안아주었다. 파티에서, 거리에서, 집에서, 밖에서, 마음껏 친구들에게 안겨보았다. 어색하게 손만 흔들지 말고, 정 없게 꾸벅 머리만 숙이지 말고. 누군가를 맞이하는 일이란 두 팔을 벌려 서로의 체온을 기꺼이 나누는 일이 아닐까. 안아야만 만날 수 있고 안고나서야 헤어질 수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껴안아서 반갑고 그리워서 또 껴안았던 하루들이 있었다.



여행의 시작은 떠나기 때문에 설레고, 여행의 마지막은 떠나기 때문에 아쉽다. LA에서의 마지막 오후, 조급한 마음으로 찾아간 곳은 불을 뿜는 공룡이 에스프레소 잔에 새겨진 <DINOSAUR>란 이름의 카페였다. 곧 영업이 마감된다는 점원의 말에 서둘러 라테 한 잔을 시킨 순간, 카페 밖에는 핑크빛 노을이 야자수 너머로 넘실대고 있었다.


남자 바리스타와 여자 바리스타는 내가 주문한 라테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는 유유히 문밖을 나섰다. 이런 멋진 노을을 카페 안에만 가둬둘 수는 없었을 테니까. 어느새 노을을 함께 바라보던 두 사람, 서로를 안아주던 두 사람, 노을의 온기를 품에서 품으로 나누던 두 사람.


꼬옥, 누군가를 안아본다면 알 수 있다. '꽈악'보다는 한결 가볍고 '꾸욱'보다는 조금 더 간절한 어떤 힘의 세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앉았다 일어난 소파에 남은 엉덩이 자국처럼, 그 미약한 포옹이 때론 가슴에 흔적처럼 남는다는 것을. 이제 곧 사라질 작은 온기가 마음에 커다란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을. 사람을 흔들리게 한다는 것을.


꼭, 다시 만나고 싶은 풍경이

꼬옥, 서로를 안아주던 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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