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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박 Mar 02. 2019

곰팡이가 핀 오징어채 먹어도 될까요?

곰팡이 이야기 3

일전에 대학 동아리 모임에서 1박으로 지리산 산행을 하였다. 산속에서 펼쳐진 즐거운 저녁 술자리. 술이 몇 순배 돌아가고 분위기도 고조되었다. 그런데 안주로 가지고 온 오징어채에 곰팡이가!!! 이것 말고는 준비한 안주도 없는데, 산속이라 어디서 다른 안주를 구할 때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안주도 부족한데 곰팡이를 틀어내고 그냥 모두 먹는다.

2) 곰팡이가 핀 부분은 버리고 나머지를 안주로 먹는다.

3) 불안하니 모두 버리고 안주 없이 술만 마신다.

4) 술 그만 먹고 일찍 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익숙한 곰팡이다. 이 곰팡이는 Eurotium (Aspergillus section Aspergillus)이라는 속명을 가진 곰팡이다. 이 곰팡이는 다른 곰팡이에 비하여 낮은 습도(정확히는 낮은 수분활성도)에서 자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놈이다. 그래서 오징어채, 육포 같은 말린 고기, 딸기잼 같은 설탕 졸인 식품, 간고등어 같은 염장 식품, 여름철에 습도 높은 신발장에 보관된 구두 등의 가죽 제품 등에서 자란다.


원치 않는 곳에서 자라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이 곰팡이는 발효에 있어서도 중요한 곰팡이다. 감칠맛나는 우동국물을 만드는 가쓰오부시(鰹節,かつおぶし, Katsuobushi). 가쓰오부시는 가다랑어(鰹)를 포를 뜬 후에(節) 훈제를 하고 곰팡이(Eurotium repens, 현재명 Aspergillus pseudoglaucus)를 접종시켜 발효시킨다. 곰팡이는 단백질 분해효소를 만들고 이 효소가 가다랑어의 단백질을 감칠맛나는 글루탐산 등의 아미노산으로 바꾼다. 카츠오부시는 곰팡이가 만들어 놓은 천연 MSG을 가진 육포인 셈이다. 


< 가쓰오부시, 枕崎水産加工協同組合 사진 인용>



또 있다, 보이차(普洱, Puer tea)!

보이차를 만드는 주요 곰팡이는 의외로 소주로 만드는 흑국균(Aspergillus luchuensis)이나 후숙 과정에 관여하는 것이 이 곰팡이(Eurotium cristatum, 현재명 Aspergillus cristatus)다. 이 곰팡이는 검은 찻잎에 노란색의 자실체를 형성하기에 눈에 잘 뛰며 황금꽃, 금화(金花, golden flower)라 불린다. 금화가 핀 차는 잘 발효된 차로 인정받고 고가로 팔린다. 


< 보이차 금화, 금화(좁쌀곰팡이)가 핀 보이차는 잘 발효된 것으로 높은 가격을 받는다. 사진은 위키피디아 인용>



하동녹차연구소에서 이 곰팡이를 이용하여 금화차를 개발하기도 하였다(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724_0010182310&cID=10815&pID=10800)  (보이차의 곰팡이에 대하여 후에 별도로 한번 다뤄 봐야겠다).


하나 더! 메주에도 이 곰팡이가 핀다. 주로 메주 발효 말기에 녹색으로, 때로는 노랗게 자실체를 형성하는데 노란색일 때는 일반인들은 이를 황국균(Aspergillus oryzae)로 생각한다(이 역시 나중에 한번 자세히 말씀드릴께요). 


< 메주의 좁쌀곰팡이 해부 현미경 사진>


이 곰팡이는 세 번 변신한다. 처음에는 하얀 실(균사)로 자란다. 이어서 생장환경이 좋으면 후손을 빨리 퍼뜨리기 위하여 분생포자를 대량으로 생산하는데 포자색깔은 녹색이다. 가쓰오부시에서는 이 단계까지 곰팡이가 자라는데, 따라서 가쓰오부시 발효에는 녹색곰팡이가 핀다고 한다. 오징어채에 핀 곰팡이도 이 상태다. 이 후에 생장환경이 좋지 않으면 버티기 위하여 노란색의 열매(자낭구)를 형성하는데 돋보기나 현미경으로 보면 마치 좁쌀과 같다. 보이차에서 여기까지 자라고 이 좁쌀을 금화라고 한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이 곰팡이의 자실체는 좁쌀과 같아서 나는 이 곰팡이를 편하게 좁쌀곰팡이로 부르는데 발효를 연구하는 일부 그룹에서는 금화균(金花菌)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길어졌는데 다시 문제로 들어가서 곰팡이 핀 이 오징어채를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1) 안주도 부족한데 곰팡이를 틀어내고 그냥 모두 먹는다.

2) 곰팡이가 핀 부분은 버리고 나머지를 안주로 먹는다.

3) 불안하니 모두 버리고 안주 없이 술만 마신다.

4) 술 그만 먹고 일찍 잔다.


P.S.) 

1) 오징어채에 핀 이 곰팡이는 농업미생물은행에 KACC 48500으로 보존되어 있으며 원하는 사람에게 분양됩니다.

2) 선택지 중에서 어떤 답을 선택하건 자유이나, 4번을 선택한 사람은 산에 같이 가고 싶지 않은 사람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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