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0일 전북 정읍의 첨단산업단지 복합문화센터에서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진흥청, (재) 농축산용미생물산업육성지원센터, (재)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이 그린바이오산업 거점기관 미생물 안전 중복보존 협약식을 거행하였다. 매우 뜻 깊은 행사인데 얼핏보면 흔한 협약식 중의 하나로 보일 것 같아 그 의미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조선왕조 실록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의 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문서로서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록되었다. 세종대왕의 찬란한 업적, 연산군의 폭정 등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 조선왕조 실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 조선왕조 실록이 중복으로 보존되지 않아 소실되었다면?
실제 조선왕조 실록이 완전히 소실될 뻔했다. 때는 1592년 임진왜란. 4월 13일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거침없이 한달여만에 한양에 진입한다. 당시 조선왕조 실록은 한양의 춘추관을 주 보존소로 하고 충주사고, 성주사고, 전주사고에 중복 보존되었는데, 왜군들의 진군 경로에 있던 한양의 춘추관, 그리고 충주사고, 성주사고가 왜군들에 의하여 불태워진다.
마지막 남은 곳은 전주사고 한곳, 아직 전주성까지 왜구가 침범하지 않았으나 이들이 전주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시간 문제. 그렇다면 전주성 안에 있는 전주사고의 마지막 남은 조선왕조실록이 소실될 확률도 99%. 전라도관찰사가 조선왕조실록의 보존을 위한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확실한 방안을 만들지 못하고 있을 때에,
정읍의 선비 '안의'와 '조홍록'이 전주로 달려가 조선왕조실록 1300여권을 실고 50여 km 떨어져 있는 정읍의 내장산 용굴암으로 실록을 대피시킨다. 이날이 1592년 6월 22일인데 후에 대한민국 정부는 이날을 ‘문화재 지킴이의 날’로 정해(2018년) 이들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정읍의 두 선비는 내장산 용굴암에 밤낮 불침번을 서면서 결국 이 실록을 지켜내고 왜군이 물러난(?) 1593년 7월에 선조의 명에 따라 이 실록은 안전한 곳으로 인계된다.
그린바이오산업 미생물 중복보존 협약식이 내장산 용굴암 인근의 첨단산업단지 복합문화센터에서 이루어지고, 또한 이웃한 농축산용미생물산업육성지원센터가 보유한 그린바이오 산업 미생물이 전주의 농촌진흥청에 중복보존 되는 것은, 극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이 보전된 역사에 비추어 매우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린바이오 산업이란? 그린바이오산업법 2조에는 “'그린바이오'란 농업생명자원법에 따른 농업생명자원 등에 생명공학육성법의 생명공학과 관련된 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린바이오산업'이란 그린바이오를 활용하여 농업 및 농업 관련 전후방 산업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서 종자, 미생물, 곤충, 천연물, 식품, 기타와 관련된 재화 또는 서비스를 개발, 생산, 판매, 유통하는 산업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해가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은데, “ 그린바이오산업에서 그린은 농업과 식품이고, 바이오는 생명공학기술이므로, 그린바이오산업은 기존의 농업과 식품 산업에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소득을 창출하는 산업을 일컫는 것으로 주요 대상이 종자, 미생물, 곤충, 천연물, 식품, 기타이다” 라고 하면 이해가 더 쉬울까?
아뭏튼 이 분야는 정체된 전통 농식품시장과는 달리 년 6.7% 속도로 빠르게 성장하여 세계 시장 규모가 2020년에 이미 1조 2천억불에 이른다고 한다. 이에 국내에서도 농림축산식품부에 "그린바이오산업팀"이 생기고 2024년에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그린바이오산업법"이 제정되고 올초부터 시행되고 있다.
농식품부는 그린바이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그린바이오 산업체를 종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분야별 거점 시설(허브)'의 구축이다. 미생물 분야에서는 바이오 비료, 농약, 사료첨가제의 상품화지원을 위해서 정읍의 '농축산용미생산업육성지원센터'를, 발효산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순창에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을 거점기관으로 구축하여 지원하고 있다.
농업생명자원법.
생명자원은 씨앗을 의미하고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모든 연구의 출발이다. 특히 농업생명자원은 벼, 보리 등의 식량생산을 담당하는 작물의 종자를 포함하고 있다.
20세기말에 생물다양성협약이 체결되면서 각국들은 자기 나라 생물자원들을 챙기기 시작하고 다양한 법률을 만들어 자국의 생명자원 산업을 육성하고 또한 국외로의 반출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도 부처별로 생명자원법을 만드는데 농업생명자원법이 2008년으로 처음이었고, 이어서 과기부의 생명연구자원법(2009), 해수부의 해양생명자원법(2012), 질병청의 병원체자원법(2016), 그리고 환경부의 유전자원법(2017)이 제정되었다.
농식품부는 생명자원 관리를 위한 국가의 선도 부처였는데, 이 법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하여 매5년마다 농업생명자원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한다. 2024년에 제4차 기본계획이 수립되었는데 이 때에 그린바이오 산업 육성전략 및 그린바이오산업법의 내용들이 농업생명자원 기본계획에 다수 포함되게 된다.
미생물의 경우에는 농업생명자원법상 농업미생물 관리 책임기관은 '국립농업과학원 농업미생물은행(KACC)'이고 그린바이오산업법에 근거한 그린바이오 산업 육성전략의 미생물거점기관은 농축산분야는 '농축산용미생물산업육성지원센터', 식품분야는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이다. 제4차 기본 계획은 이 세 기관이 협력하여 그린바이오 산업 미생물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산업화를 지원할 것을 포함하고 있다.
농업미생물은행은 국가의 소중한 산업 미생물이 자연재해나 시스템 오류로 멸실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다양한 사업을 실시해 오고 있었다.
먼저 국내에는 4개의 특허미생물 기탁기관이 있는데 이들의 미생물을 중복보존하기 위하여 특허청과 협력에 의하여 '국가특허미생물통합보존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생물자원센터(KCTC), 한국미생물보존센터(KCCM), 서울대학교 한국세포주은행(KCLB), 그리고 농업미생물은행(KACC)이 보존관리하고 있는 특허미생물이 제 3의 장소인 수원에 중복보존되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특허미생물은 4개의 특허미생물 기탁기관에서만이 아니라 유사 시를 대비하여 별도의 공간에서 한번 더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5901599
농업미생물은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업이 보유한 미생물에 대하여도 안전중복보존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기업은 상품 제조에 현재 사용되고 있는 미생물은 잘 관리하지만 과거의 미생물이나 유사한 미생물의 관리가 소흘해질 수 있다. 이에 농업미생물은행은 기업이 보유한 다수 산업 미생물이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은행 내에 기업이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 주고 직접 해당 미생물을 입고하고 필요할 때에 출고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497493&call_from=seoul_paper
현재 바이오농약 비료 생산업체 미생물, 장류 생산업체 미생물, 주류 생산업체 미생물,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 생산업체 미생물 등이 농업미생물은행에 이중으로 보존되고 있다.
지난 11월 10일 국립농업과학원 농업미생물은행과 농축산용미생물산업육성지원센터, 농업미생물은행과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과의 그린바이오 미생물 안전 중복 보존 협약식이 있었다. 이 협약으로 육성지원센터가 보존하고 있는 농축산 미생물 146균주(축산미생물 114, 농업미생물 32)가 년내로 농업미생물은행에 중복보존된다. 그리고 산업진흥원의 식품 발효 미생물 177균주(유산균 123, 고초균 42, 효모 12)가 농업미생물은행에 중복보존된다.
두 그린바이오산업 미생물 거점기관은 우선은 146균주(지원센터), 177균주(진흥원)가 입고되지만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더 넓은 공간이 농업미생물은행에 확보되어 있어 향후에 추가로 미생물을 입고할 수 있다.
두 기관이 기탁한 미생물은 농업미생물은행(KACC)의 액화질소냉동고와 초저온냉동고의 다시 두가지 방법으로 보관되어 멸실이 최소화 되도록 하였다. 보관 기간은 우선 5년으로 2029년까지이지만 5년단위로 계속 연장 될 수 있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고 한다. 역사는 반복되고 미래의 나침판이다. 조선왕조실록이 전주사고에 보관되지 않고 안의와 조홍록 같은 책임있는 선비가 없었다면 임진왜란 전의 조선의 역사는 깜깜한 암흑이었을 것이다.
그린바이오 산업에서 미생물이 차지하는 역할은 매우 크다. 그리고 미생물을 그린바이오 산업에 활용하는데 있어 기반이 되는 부분이 자원 관리이다. 이 번의 그린바이오산업 미생물 거점기관과 농업생명자원 미생물 책임기관인 농업미생물은행의 중복보존 협약으로 발굴된 미생물자원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련된 그린바이오산업 미생물 자원관리 기반 위에서 미생물 그린바이오 산업이 활짝 피기를 기대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230215122400003
P.S.) 이 글은 저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기관의 정책방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또한 사용된 데이터들이 사실과 다를 수 있으므로 인용 시에 확인하기 바랍니다. (2025. 11. 16., 곰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