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에서 돌아와서 나는 앞으로 나의 인생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여기 연구소에서 남아 정규직에 도전할 것인지 아니면 코펜하겐 비지니스 스쿨로 돌아갈 것인지 결정을 해야 했다. 연구소분들은 내가 그분들과 함께 일했으면 한다고 했다. 나도 그분들이 너무 좋았다. 정말 가족같은 분들이었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다만 코펜하겐 비지니스 스쿨에 다시 돌아가는 것은 포기하는 편이 나았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렀다고 생각했다. 이미 휴학을 하고 떠나온지 일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연구소의 일을 하며 정규직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날 나는 옛날 이메일들을 보다가 내가 프랑스에 있는 파리정치대학(SciencesPo)에 합격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옥스포드에 있을 때 파리정치대학과 코펜하겐 비지니스 스쿨에 합격했고 나는 처음 코펜하겐 비지니스 스쿨에 입학했기 때문에 파리정치대학의 합격은 혹시 몰라 뒤로 연기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때 뉴스나 신문을 보면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해서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정치를 생각하는 청년이라면 의례 마크롱에 대해 궁금하고 더 알고 싶어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당시 우리나라 정치계에서도 가장 핫한 인물이었다. 모든 청년들이 그와 같이 되고 싶어했다. 그 당시 나는 정치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 청년 정치 모임에도 종종 나갔기 때문에 이 현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나 또한 관심이 가기 마찬가지였다. 마크롱 대통령에 대해 알아보니 그도 나와 같은 파리정치대학 행정학 출신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파리정치대학은 프랑스의 대통령과 정치인들 그리고 외교관들을 포함한 고위 공무원들을 육성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프랑스의 정치인들은 거의 이곳 출신이었다. 나는 파리정치대학에서 어떻게 마크롱 같은 사람을 육성하였는지 그 커리큘럼이 궁금했다. 우리나라에는 정치인을 육성하는 학교는 없었기 때문에 더 호기심이 갔다. 또한 나는 마크롱 대통령의 리더십이 궁금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퇴근을 하고 집에서 오랜만에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이메일을 열어보니 파리정치대학에서 이번에 올 것인지 결정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번에 오지 못하면 나의 합격은 취소가 되고 만다고 하면서 장학금 신청서를 같이 보내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학금 신청서는 이미 그 신청 기간이 끝나고 말았다. 그 당시 나는 학비가 없었기에 파리로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장학금 신청서를 작성하고 학교로 보냈다.
거의 이주 뒤에 장학금에 합격했다는 놀라운 소식이 왔다. 학비의 일부 지원이었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두려웠다. 이대로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나에게는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더이상의 도전과 이상은 나를 힘들게 할 수도 있었다. 며칠동안 고민을 하다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저 파리정치대학에 우연하게 장학금 신청서를 보고 신청을 했는데 지원기간이 좀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장학금을 준다는 소식이 왔어요. 다만 전액은 아닙니다"
나는 아버지가 내가 안정적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나는 네가 프랑스로 갔으면 좋겠다. 너에게는 꿈이 있지 않니. 아버지는 네가 지금 안정적으로 사는 것보다 삶의 목표를 쫓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구나"
"아버지 저 두렵습니다. 다시 공부할 자신도 없구요"
나는 아버지께 두렵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갈 자신이 없다고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회사를 퇴근하고 오니 아버지가 혼자서 몇시간 동안 차를 운전하시고 내가 사는 곳으로 오셨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다시한번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싶구나. 네가 여기서 안정적으로 직업을 갖고 사는 것이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는 네 아버지니까"
나는 이날 아버지가 집으로 다시 가신 후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사실 무서웠다… 지금부터의 도전은 진짜 나를 힘들게 할 수도 있었다. 여기서 간신히 자리를 잡았는데 다시 무엇을 도전하는 것이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13년전 내가 재수하고도 대학 입학에 실패할 때 한번 더 기회를 주신 분이었다. 13년전의 그날과 지금의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
당시 파리정치대학 행정학 석사는 일년 코스였고 실제로는 10개월 정도 수업을 들으면 되었다. 나는 프랑스로 갈 결심을 하고 연구소 분들에게 말씀을 드렸다. 연구소 분들은 매우 아쉬워하셨다. 여기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일년만 공부하고 바로 돌아오겠다고 하였다. 서로 떠나는 날이 아쉬워 퇴근 후 함께 회식을 몇번씩이나 했다. 나 또한 이분들을 떠나는게 아쉬워 계약이 끝나고도 일주일 더 회사에 가서 일을 하였다.
연구소의 윗분들이 나에게 언제든지라도 좋으니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 결국 아직도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그분들께 정말 감사하다. 내 생명의 은인이었다. 이 곳에 있어 나는 회복할 수 있었고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쉽지 않은데 나는 그때 진심으로 행복했고 모두에게 감사했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한채 2019년 9월 나는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