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소고
2012년 8월 28일, 초대형 태풍 볼라벤이 대한민국을 강타합니다. 심상치 않은 구름의 모습에 TV에서 알려준 대로 사무실 창문에 X자 모양으로 박스테이프를 붙입니다. 모두가 창문이 깨질까 걱정하던 그때, 제 걱정은 사무실 창문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군인 신분임에도 어렵사리 2주간의 휴가를 득해 준비한 아프리카 여행이었습니다. 오늘 반드시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그전에 이곳 대구에서 KTX를 타고 서울에 당도해야 합니다. 라디오에서는 열차 운행이 곧 정지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조급함에 떨며 동대구역으로 향합니다. 겨우 열차에 탑승했고 다행히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비행기들이 취소되는 가운데 에미레이츠 항공의 A380은 이륙할 수 있다는 낭보를 접합니다. 친구들과 함께 쾌재를 부릅니다.
출국장 게이트 앞에서 정신을 차립니다. 이제 안도할 수 있습니다. 이제 경유지인 두바이까지 즐겁게 비행하면 됩니다. 친구들과 맥주잔을 기울이면 시간은 금방 흐를 테죠. 그런데 갑자기 집에 있는 엄마 생각이 찾아옵니다. 대학교 때 여행을 참 많이 다녔는데, 그때마다 엄마에게 조금씩 돈을 빌렸던 한심한 아들입니다. 너무 사적인 이야기라 얘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럽지만, 10년이란 시간을 외출 한번 하지 못하고 할아버지를 간병한 엄마입니다. 저녁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던 그런 엄마입니다. 그런데도 엄마를 두고 해외여행만 다니던 철없는 아들이 바로 저 커다란 A380 앞에 멀뚱히 서 있는 모습입니다.
엄마를 모시고 킬리만자로에 오를 수는 없겠지만, 이 여행을 위해 내가 지불한 기회비용들을 생각합니다. 비싼 아프리카 여행 대신 엄마와 동남아 여행을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도쿄에서 맛있는 초밥을 먹었을 수도 있겠고, 아예 여행경비로 엄마에게 멋드러진 옷 한 벌을 선물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도 매번 역마살을 이기지 못해 여행에 돈을 쏟는 스스로를 생각하니, 죄책감이 몰려옵니다. 엄마뿐이 아닙니다. 어려운 형편에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두 작은엄마들이 생각납니다. 바쁜 직장 때문에 제대로 된 휴가를 즐겨보지 못한 고모도 생각이 납니다. 탑승이 시작되어 첫 번째 기내식을 받아 들 때까지 이 죄책감을 떨치지 못합니다. 죄책감은 곧 무거운 우울함으로 바뀝니다.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하고, 가보고 싶은 곳은 모두 갔어야 하는 철없는 20대였습니다. 늘 가진 것 이상의 호사를 누리고 살았죠. 물론 엄마를 포함한 가족들은 모두 항상 “여행 같은 건 안 가도 그만”이라 말합니다. 실제로 그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여행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다만 '여행의 즐거움을 온전히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번쩍번쩍한 조식당에서 남이 차려준 아침상을 배 터지게 드셔 보시게 하고 싶고, 잔잔한 음악과 함께 고급 스파도 받아보시게 하고 싶고, 고층의 전망 좋은 루프탑 바에서 이국적인 도심을 내려다보며 기념사진도 함께 찍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동반한 해외여행을 기획했습니다. 방송국 취업에 성공해 가족들 모두가 즐거워하던 때였고, 마침 ‘홍콩익스프레스’라는 저가항공사의 특별운임이 나왔던 때였습니다. 취업에 성공한 기쁨에 도취되어 내가 모든 여행경비를 대겠노라 공언했고, 가족들도 이번만큼은 “좋다! 가자!”며 동의했습니다. 엄마와 작은엄마 두 분, 그리고 고모와 나. 이렇게 5장의 비행기표를 호기롭게 발권했습니다. 내가 모든 비용을 대리라. 비록 비행기는 좁디좁은 홍콩익스프레스이지만, 팀호완과 카우키를 맛보고, 침사추이의 밤거리를 누비겠노라 다짐했었죠. 그런데 마치 몰래카메라처럼 기대하지 않았던 다른 방송국의 1차 시험에 통과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공교롭게도 면접일이 홍콩 여행 일정 중이었고요. 깊은 갈등 끝에, 아쉽지만 홍콩 여행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면접 결과는? 젠장, 불합격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나름 괜찮은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보수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휴가를 길게 쓸 수 있었기에 좋아하는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여행의 전반적인 수준은 갈수록 높아졌죠. 연예인들과 해외 촬영도 많이 다녔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들과 동료들, 심지어 군대 동기들과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좋다는 곳을 모두 섭렵하고, 맛있다는 산해진미를 모두 맛보겠다는 기세였습니다. 신나게 여행 계획을 세우고, 설렘으로 공항에 도착해 탑승 게이트 앞에 서면 역시나 가족들이 떠올랐습니다. 거짓말처럼 똑같은 패턴으로 죄책감과 우울함에 죽상으로 탑승하곤 했죠. ‘다음번 여행은 반드시 가족들과’라는 공염불만 반복하면서요. 하지만 매 여행의 짜릿함은 그런 우울감들을 대번에 날려버렸고, 중독성 있는 신남에 즉흥적 여행들만 반복하며 살았죠. 금붕어처럼 매번 같은 우울함을 맞이하면서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이제는 정말 가족들과 떠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을 떠나볼까 둘러보니, 둘째 작은엄마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폐에 문제가 생겨 호흡기를 장착하고 생활하게 된 작은엄마에게 이제 해외여행은 꿈꾸지 못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거기에 지난주, 고모가 담낭암 4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까지 들었습니다. 원망스러움에 껑껑 울었습니다. 고생만 하다 여행 한 번 함께 하지 못하고 건강을 잃은 가족들 생각에 심장이 조여왔습니다. 이제는 돈이 있어도, 시간이 있어도 갈 수 없다는 현실이 억울했고 분했습니다. 홍콩 여행을 강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머리를 잡고 흔들었습니다. 매번 탑승 게이트 앞에서만 우울한 척했던 제 모습이 가증스럽게 느껴집니다.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면 저는 아마 여행객보다는 가이드의 역할에 더 치중하겠죠. 바쁠 것이고, 신경 쓸 것들이 많겠죠. 하지만 전 그 수고스러움을 정말 즐기고 싶었습니다. 내가 여행하며 느꼈던 기쁨과 행복들을 우리 가족들과 함께 느끼고 싶었습니다. 이제 내가 경제적으로 안정이 됐고, 여행 경험도 많으니 언제든 가족들에게 멋진 여행을 선물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제 오만한 순진함과 비겁한 나태함을 반성합니다. 비록 많이 늦었고 어려움이 커졌지만, 가족들과 함께 지금부터라도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기를. 그리고 작은엄마와 고모가 건강해지기를. 간절히,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