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긴급 회항한 타이중행 KE 189편을 탑승했던 승객입니다. 당시 기내의 상황과 경험을 공유하고자 글을 써서 올립니다. 이번 타이중 여행과 관련한 여행기를 쓰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좋지 않은 (조금은 무서울 수도 있는) 내용의 후기를 올리게 되어 유감스럽습니다만, 이 또한 여행의 일부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 내려가 봅니다. 1편은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2편은 긴급 회항 당시 여객기의 상황, 3편은 그 후속 조치들과 지금 하고 있는 여행에 관련된 이야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기내에서 문제가 발생한 시점에 제가 느낀 감정들의 개연성을 위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을 함께 적었으니 '긴급 회항 후기'만 궁금하신 분들은 곧 게시할 2편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최대한 현장감 있게 글을 쓰고자 경어는 생략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미리 감사 인사드립니다.
아내는 항상 대만 여행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나는 막연함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대만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나의 질문에 돌아오는 “대만은 그냥 싫어”라는 아내의 대답이 늘 불만이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생겼다. 긴 프로젝트를 끝낸 아내는 기분 전환을 위해 일본 온천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녀와 내가 함께 여행할 수 있는 날은 6월의 한 주말로 제한적이었다. 그 주말, 그녀가 좋아하는 료칸(호시노야)의 가격을 알아보는데 임박한 기간 때문인지 숙박비가 평소보다 높았다. 무엇보다 이전에 다녀왔을 때보다 곱절 이상의 비용을 내야 함에 섣불리 예약할 수 없었다. 대안을 열심히 살펴보던 중 대만에도 호시노야가 있음이 떠올랐다. 심지어 그곳은 신축으로 최신의 시설을 자랑하더라. 숙소가 위치한 온천 마을 구꽌(guguan, 谷關)은 대만 중부 타이중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었고, 교토나 가루이자와에는 없는 수영장까지 있기에 6살 딸과 함께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최적의 숙소로 보였다.
나는 그동안 막연히 대만을 거부하던 아내에게 도전정신(혹은 더 솔직히 말하면 ‘오기’)을 갖고 있었기에 호시노야를 빌미로 설득을 시도해 보았는데 웬걸? 아내는 의외로 쉽게 승낙을 했다(최신 시설, 수영장, 새로운 곳 등등 다양한 설득 시나리오를 준비했지만 모두 필요 없었다). 사실 나 역시 대만에 특별함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내의 이유 없는 거부에 괜한 시도를 반복해왔던 것인데, 그 길었던 서사가 이렇게 우리를 <대만 타이중 온천여행>이라는 흥미로움으로 안내해 주었다.
요즘의 상황을 살펴보니 타이중까지는 티웨이항공에서 정기편을 운항하고 있었다. 그런데 스케줄이 썩 좋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퍽 운이 좋다 느낀 것은 대한항공이 하계에 타이중에 한시 취항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이다. 비슷한 가격인터라 대한항공으로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타이중이 그렇게 인기 있는 관광지는 아니었는지 예약도 수월했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항공과 숙소 예약을 모두 마무리하였다. 그렇게 나와 아내, 그리고 딸 우리 셋은 <대만 타이중 온천여행>의 준비를 마치고 여행의 기대를 몽실몽실 빚어 나갔다.
여행 당일, 예보에도 없던 비가 꽤 쏟아졌다. 버스를 타고 가려던 계획을 변경해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비로 인해 이동이 평소보다 오래 걸렸고, 겨우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쳤다. 이동 간 날씨가 좋았으면 어땠을까 싶다가도 ‘대만 날씨가 중요하지’라며 넘겼다.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며 전광판을 봤는데 우리가 탑승할 KE189편에 ‘지연’이라는 표시가 추가되었음이 눈에 들어왔다. 악천후 때문일까? 30분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변경된 시간에 맞춰 게이트로 향했다. 하지만 탑승구는 30분 뒤에도 열리지 않았고, 약 1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탑승을 시작했다. 게이트의 직원들은 답답한 승객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희희낙락. 그들이 우리처럼 같이 엄중하고 애타는 표정으로 일할 필요는 없다지만 (나는 아직 이런것을 쉬이 넘길만큼 성숙하진 못하다) 괜스레 마음이 상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탑승을 마쳤는데 꿈쩍을 하지 않는다. 곧이어 이어지는 기장의 안내 방송. 30분 더 기내에서 대기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뭔가 계속해서 꼬여가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사실 내 마음이 마냥 상쾌하지 못했던 이유가 몇 가지 더 있었는데 그 첫 번째는 항공기의 기종이었다. 나는 개인적 이유로 항공 사고와 안전에 아주 민감한 편이고 그렇기에 항공기 선택에도 신중을 기한다. 이번에 탑승할 KE189편이 최근 두 번이나 추락했던 문제의 보잉 737-MAX 8이었던 것이 첫 번째 찝찝함이었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예약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번에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사고가 많았던 만큼 보완도 많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업계 사람들 사이에 도는 ‘보잉사 직원들은 737-8에 가족들을 태우지 않는다’라는 농담 섞인 이야기가 계속 나를 괴롭혔다. 심지어 이번에는 가족들을, 그것도 딸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 아닌가.
두 번째 불편함은 좌석 지정이었다. 대한항공 737-8의 이코노미 석은 3-3 배열이다. 당연히 세 가족이 함께 앉아서 갈 수 있었고, 예약 상황도 빡빡하지 않았기에 날개 뒤쪽에 3석을 연달아 지정해 놓았다. 그런데 온라인 체크인이 시작되고 나니 블록되어 있었던 이코노미 제일 앞자리에 2석이 지정 가능한 것 아닌가? 앞이 트여 있어 편하게 다리를 펴고 갈 수 있고 평소에는 유상으로 판매되는 자리이기에 아내와 딸아이를 생각해서 자리 지정을 얼른 마쳤다. 다행히도 바로 뒷자리도 비어 있어 뒤에 앉아서 나름 함께 여행할 수 있었다. 다만 ‘조금 불편하더라도 셋이 함께 나란히 가는 것이 더 좋았을까?’ 하는 마음은 계속 나를 가렵게 했는데, 워낙 후회를 많이 하는 내 못 남 때문이겠거니 하며 애써 외면했었다.
이런 자잘한 기분 나쁨 속에, 지리한 기다림 끝에, 예정보다 2시간여 늦게 KE189는 겨우 이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