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여행하는 방법
어느 가을의 교토 여행. 갑자기 이제 그만 걸었으면 한다는 엄마. 아직 청수사를 다 돌아보지 못했는데, 인솔자인 난 조바심이 난다. 피로한 엄마에 대한 걱정만큼의 답답함도 가슴에 함께 들어찬다. ‘아직 보여 드릴 것이 많은데...’ 미간에 주름을 잡고 표정에 짜증을 묻혀내보이자 아내가 내 허리춤을 콱 찌르며 째려본다. 그런 우릴 보는 엄마는 그저 미안해만 한다.
엄마에게 뿐이 아니다, 초등학생 딸이 내 맘대로 행동해주지 않을 때 (사실 그녀가 딱히 잘못한 것도 아님에도) 나는 엄한 표정과 짜증 섞인 말을 모두 숨겨 내지 못한다. 재빨리 평정을 찾으며 다시 자애로움으로 딸을 대하려고 하지만 늦어버렸다. 그녀는 이미 놀라 위축되어 있다. 매번 조금씩 늦는 이 타이밍에 늘 후회하곤 한다.
다시 교토의 엄마를 돌아본다. 엄마가 내게 미안해하는데, 냉정히 엄마의 탓이 전연 아니다. 굳이 누구의 책임인지 가려보자면 당연 나의 불찰일테다. 그러다 불현듯 젊은 시절의 엄마를 쫓아가 본다. 남편 없이 두 남매를 홀로 키웠던 엄마는, 그럼에도 우리에게 짜증 한 번 내지 않았던 것 같다. 나를 대하는 엄마의 얼굴은 늘상이 미소였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니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을, 아빠가 되어보니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순간에 가장 아쉬움이 컸을 사람은 엄마였을텐데. 나는 왜 그런 엄마를 닦달했을까. 왜 애써 아프다는 사람의 마음까지 불편하게 했을까. 예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엄마의 한결같은 인내와 배려에 비하여 변함없이 이기적이고 신경질적인 나의 태도는 얼마나 형편없는지. 좋은 아빠일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하더라도, 좋은 아들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충분치 않을텐데. 즐거움만큼 쓰린 마음도 진하게 남은 교토 여행이었다.
일년 반 쯤 지난 겨울, 이번에는 따뜻한 방콕을 여행했다. 십수 번도 넘게 드나든 방콕인데 엄마를 모시고 간 것은 처음이었다. 교토를 교훈 삼아 고민 끝에 짜낸 일정은 과연 느슨했음에도 엄마의 다리는 역시나 일정을 버텨내지 못했다. 아직 먹고 마시고 놀 거리가 많이 남았음에도 숙소에서 잠시 쉬고 싶다는 엄마. 너희가 재밌게 놀고 오면 그걸로 괜찮다는 엄마의 말씀. “그렇지 않다”라는 마음 속 말대꾸를 부여잡고, 웃으며 "그러겠다" 대답했다. 당연히 아쉬웠지만, 이번에는 해냈다!
누구나처럼 나도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고, 더 많은 것들을 보여드리고 싶다. 새로운 가정을 꾸렸기에 마음같이 다 할 수는 없지만, 최선은 다하고 있다. 이번 여름, 뉴욕의 친척 집에서 한 달 살이를 하시던 엄마와 친척들에게 푸에르토리코 여행을 선물했다.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퍽 나쁘지 않은 리조트로 예약했는데, 그곳에 도착한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너무 아름답다. 푸에르토리코의 바닷가. 고마워 아들” 아니요, 제가 고맙습니다. 그곳에서 산책도 수영도 관광도 힘내서 해 준 엄마가 너무 고마웠다. 말도 못하게 고마웠다.
부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매일이 최고로 행복하기를, 또 우리 엄마 다리는 그만 아프기를 빈다. 그리고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여행을 좋아하는 만큼, 엄마와 함께 더 많이 여행할 수 있기를 오늘도 소망한다. 엄마의 지침을 원망하지 않기를, 엄마가 내게 해준만큼 딸에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내 모든 염원과 사랑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