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비행기의 이상 상황은 해결되었고, 이제 제주도로 착륙할 예정입니다.”
사무장의 안내 방송이 나가자마자, 기내의 불안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하지만 비행기는 좀처럼 착륙하지 못하고 제주 상공을 빙빙 맴돌았는데, 이것이 연료 투기 때문인지 아니면 기체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인지 정확한 사유를 알지 못했기에 내 긴장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천공항으로 회항합니다.” 라는 기장의 안내 방송 후 또 한 시간여를 더 날아 활주로에 착륙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일소되었다.
기내에서는 박수와 안도의 한숨, 수고했다는 격려 같은 것들이 터져 나왔다. 비행기가 멈추자마자 나는 앞자리로 튀어나가 가족들을 끌어안았다. 쭈그려 앉아 그들을 품에 안는데, 다리도, 팔도, 손도, 그리고 심장도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땅 위에 서 가족들을 온전히 안아낼 수 있다는 기쁨에 순간 취했버렸다. 이 순간,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함께 부등켜있다는 사실이 방금 전 상공에서 경험한 비현실적 장면들보다 더 믿기 어려웠다. ‘무서웠지만 꾹 참았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는 더 이상 눈물도 참기 어려웠다. 잘 버텨준 아내와 아이, 역시나 두려웠을 승무원들, 함께 기도하며 버텨낸 승객들, 그 기도를 들어준 신, 어딘가에서 날 지켜줬을 아빠, 모두에게 고마웠다.
드디어 하기의 순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심 어린 인사를 사무장에게 건넸다. “저희 직원들이 지상에서 후속 절차 잘 챙겨드릴 겁니다. 고생하셨어요.” 사무장의 돌아오는 인사에 마치 전우애 같은 것을 느끼며 그렇게 작별을 고하고 도착 게이트로 이동하니, 역시 많은 직원들이 나와 있었다. 공항 관계자와 항공사 직원들이 도합 이삼십 명은 넘게 도착해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많이 무서우셨죠’ 이런 위로와 격려를 바랐다. 아직 원인도 알지 못하고, 어쨌든 무사히 착륙한 상황에 ‘죄송합니다’, ‘저희 잘못입니다’ 같은 건 기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던진 첫마디는 조금 황당했다. 아니, 황당함을 넘어 경악스러웠다.
“면세품은 환불하고 나가셔야 합니다!”
‘어? 저 직원은 게이트를 잘못 찾아왔나?’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 또 다른 직원이 다가오며 “구입하신 면세품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최악의 환영인사였다. 35,000피트 상공에서 산소 마스크를 쓰고, 그것도 온 가족이, 두려움에 떨다 겨우 착륙한 승객들에게 가장 먼저 할 말이 저 따위 내용이라니. 이런 형편없는 응대라니.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요즘이었는데, 이 순간에는 화를 누를 수 없었다. 기내의 긴박했던 상황이 그들에게 다 전달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설마 이 정도 소동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일까? 도무지 대한항공 직원들의 저의를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소리 높여 그들에게 따졌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따졌다는 말보다는 호소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두려웠는지, 슬펐는지. 그런 생각을 안해봤냐고 물었다. 몇 시간 동안 쌓였던 내 감정들이 터져 나왔던 것 같다.
대한항공 직원들의 실언(사실 실언이라고 하기엔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지만)을 참아낸 뒤에도 역시나 실망 투성이였다. 지금 어떤 문제가 왜 일어났고, 어떻게 할 예정이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승객들에게 “호텔을 준비했으니 가서 쉬시면 된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물론 “면세품을 환불하셔야 한다”는 당부도 당연히 빠지지 않고. 내가 받은 느낌은, ‘문제가 발생했지만 다른 저비용 항공사와는 다르게 우리는 바로 당신들을 우리가 운영하는 고급 호텔로 이동시켜서 숙박과 식사를 제공할 예정이고, 내일 바로 대체편을 운영할거야’라는 우쭐함에 도취되어 있는 것 같았다. 묻고 싶은 것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거진 탈진 상태였고,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챙겨야 했기에 안내에 따라 짐을 찾고 버스에 올라 호텔로 향했다.
우리 가족은 대한항공에서 제공한 호텔에서 숙박을 마치고 다시 목적지인 타이중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나중에 듣자 하니 사고 당일 탑승했던 130여 명의 승객 중 80명만 비행기에 올랐다고 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여행을 포기한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 역시 탑승 직전까지 ‘타지 말까?’ 생각을 했지만, 공군에 있는 동생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용기를 내 탑승했다.
“형, 오늘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날일 거야. 걱정 말고 잘 다녀와.”
슬픈 이야기지만, 항공 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은 정비사들의 완벽한 점검과 조종사들이 발휘하는 고도의 집중력과 경각심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다는 위로였다. 그리고 ‘너무 나쁜 기억으로만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의 문자를 받고는 상처 난 마음을 달래고 타이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타이중에 잘 도착했다. 어제의 일을 보상이라도 하듯 날씨까지 좋아 난기류도 없었다. 타이중 공항 도착장에는 많은 방송국에서 나와 승객들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대만 입장에서도 큰일이었나 보지 싶었다. 그렇게 우린 숙소에서 꿈만 같은 휴식을 취하고, 2박 3일간의 짧은 <대만 타이중 온천 여행>을 잘 마쳤다. 본의 아니게 하루가 짧아진 일정이었지만, 순간순간을 더 의미 있게 보냈다.
난 사고의 원인을 대한항공으로부터 들은 것은 아니고, 뉴스 기사를 통해 알았는데 여압장치 문제로 급강하한 것이라 했다. 하지만 보잉사의 과실인지, 대한항공의 정비 과실인지는 여전히 다툼거리로 한창 조사가 진행 중이라 한다. 십여 분 사이에 고도를 에베레스트 산만큼이나 낮췄으니, 아내가 어지러움을 느끼고 팔에 이상 증세가 왔던 것이 이해가 갔다.
대한항공은 며칠간 이 일과 관련해서 어떤 사과나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 '몸에 이상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라'는 기본적 안내도 없었다. 심지어 다음 날의 대체편 역시 전날과 같은 기종인 <보잉 737 max 8> 항공기를 배정하는 걸 보고는 체크인 카운터에서 실소가 조금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카카오톡 메시지로 ‘불편을 드려 죄송하며, 그래서 18만 원 금액 상당의 전자 바우처를 제공해 드리겠다’라고 보내왔다. 아! 물론 유효기간이 1년이니 유의하라는 세심하고 친절한 이야기와 함께. 감사히 살아 돌아올 수 있었으니 보상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보상금으로 팔자를 고칠 것도 아닐 뿐더러. 나는 그저 게이트에 내린 순간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제스처가 있었으면 족했을 것 같다. 그저 그게 아쉬울 뿐이다.
산소 마스크와 함께한 공포스러웠던 급강하 경험을 한 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내와 아이와 함께. 그렇게 우리 가족이 지금 행복히 보내고 있는 이 순간이 마치 명작 영화의 아름다운 미장센처럼 멋지게 다가온다. 가끔은 나를 성가시게 했던 딸아이의 어리광도 그저 사랑스러운 짹짹거림일 뿐이고, 아내의 잔소리도 마치 기분 좋게 불어오는 어느 숲 속 바람소리처럼 상쾌하다. 억지로 극적으로 지어내 표현하고픈 마음은 정말로 없는데, 진정으로 그렇다. 이 마음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나 스스로도 의문이지만, 분명한 건 이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더욱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많은 여행을 다니고, 많은 비행을 하지만 이번 <대만 타이중 온천여행>은 아마도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35,000피트 상공에서 산소 마스크를 쓰고 가족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절망과 원망의 심정들도, 다음날 그 가족들과 다시 함께 아름다운 리조트에서 보냈던 행복의 순간들도 다른 어떤 날들보다 더 생생히 기억하겠지. 조종사 동생의 말처럼, 6월 22일은 이제 이렇게 우리 가족의 또다른 생일이 되었다, 매년 건강히 즐겁게 웃으며 유쾌한 생일잔치를 할 수 있기를.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으로 추억되기를 바란다. 사랑과 감사를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