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유물론을 집대성하고 자본론 저술과 함께 공산주의 이론의 기초를 든든히 세운 유태계 독일인 칼 마르크스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Guten Morgen!"
영어로 번역하면 'Good morning!' 이게 뭐냐고? 물론 내가 직접 듣지도 못했고, 다른 자료에 인용된 바도 없지만, 마르크스가 이 같은 인사를 일평생 나누고 살았음이 절대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학문의 영역에서 비중 있게 다룰 일이 아닐 뿐.
진지한 자세와 엄중한 학문적 접근은 물론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매사를 그와 같은 자세로만 대하면 현실의 다양한 역동적 측면을 놓치기 십상이다.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요한복음 4:7)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쉬 궁금해한다. '여기서 물은 뭘까?' 정답은?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삶의 필요에 따라 길으러 온, 그냥 물이다. 아닌가? 맞다. 그런데 좀 섭섭한가?
'물을 좀 달라'는 얘기는 이후 '생수',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등의 이야기로, 또 결국 복음으로 이어지기에 매우 적절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뭔가 꽤 있어 보이는 추상적 개념이기보다 여전히 너무도 구체에 가까운, 아니 구체 그 자체인 '그냥 물'이란 뻔한 대답이, 오늘날 질문자들이 으레 갖는 진지함에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 될까?
공공장소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외치는 사람을 본다. 믿는 자의 입장에서 들을 때 틀린 말은 별로 없다. 그런데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고 오늘날 대표적 민폐로 꼽히며 심지어 신고를 당하기까지.. 의로운 일에 으레 따르는 핍박?
'이와 같은 진리가 있는데 왜 믿지 않느냐?'며 마냥 투정하고 또 저주하듯 하기보다, 먼저 우리가 공히 처하여 있는 현실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나누고 교회 안에 당연히 차고 넘칠(?) 은혜와 위로를 함께 나누어 가짐이 마땅하다.
그저 내 의나 될까 말까 하는, 일방적이며 기계적인 말씀 선포가 아니라 구체적 접점을 가진 마음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사마리아 여인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좇아..
'안녕하시냐?'고 묻자. 차라리 '물을 좀 달라'고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