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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Nov 16. 2020

난민촌 + 다짐 + 또 살다가

다니던 교회에 사달이 나고 + 몇 년 뒤 + 그 교회를 떠나며..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시편 142:4~5)


우리 교회는 기성 교회의 타성으로부터 도망한 난민들의 교회다. 불편했지만 새로움과 순수함이 주는 활력이 우리를 들뜨게 했고 신앙과 삶을 은혜롭게 이어가게 했다.  


지금은 큰 시험중! 힘들 때 힘들더라도 난민들의 희망캠프가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 여기서 또 쫓겨나면 우린 또 어디로 가란 말인가?  


탈북자들을 다시 북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참으로 비인도적인 처사다. 그 자체로 즉결심판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혹 당장 죽지 않는다고 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우리의 신앙을 온전히 유지하기 참으로 어려운 상황과 조건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 이건 정말 잔인하고도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님 우리가 완전히 실족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은 나의 피난처이십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특정 개인에 의해 빚어진 물의에 대해 변호하지 않는다. 크든 작든 문제는 명백한 걸로 안다. 그러나 이 문제로 인해 다른 모든 일도 다 잘못된 것이라 여겨서는 안 된다. 여전히 귀하고 소중한 것이 대단히 많다.


겪지도 않은 일을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잖은 곡해도 있다. 있는 활력을 뒤로한 채 없는 문제를 넘어서고 해결하겠다는 모습도 본다.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애써 떠나온 옛것의 모습을 또 본다.


남아야 할 게 많이 남아 있지 않고 많은 게 달라졌다. 따라서 우려 또한 새롭다. 사용되는 단어는 혹 고울지언정 추상적이다. 구체로의 상승은 요원한 느낌이다. 실은 잘 맞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적당히 거룩하고 착한 척? 그것도 그 나름 귀한지 모르겠지만 절대 힘써 추구할 바는 아니다.


좋은 편을 택하여 누리고 알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들 앞에 겸손해야 한다. 비둘기처럼 순결하되 뱀 같이 지혜로워야 한다. 정확한 판단과 세밀한 전략 없이, 각기 다른 곳에서 구경이나 해 본, 이전 수준, 이전 방식의 어설픈 경험만 고집하면, 결국 또 다른,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제 내가 아는 사람은 적고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사람끼리는 서로   아는 것도 같다. 주님만 알기  좋은 조건일 수도 있겠다.


주어진 조건과 맺어진 관계를 함부로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각기 받아 간직한 뜻이 진정 선함을 믿고 오히려 감사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힘 있게 서기까지 충실한 증인이요 묵직한 자극이 되고자 한다.


말하자면 너무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 나쁜 때도 많지 않았나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려 보려 하지만 마음을 다스린다는 게 어디 또 그렇게 쉬운 일인가? 본의든 본의 아니게든 큰 욕심 없이 길 비켜 주는 인생을 산다고 하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이 나이 먹어 만사가 혼란스럽고 또다시 모든 것이 궁금해지는 것은.. 이 와중 현실 교회가 스스로 답이 되거나 일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크고 어려운 문제가 되어가고 있음을 현장에서 목도하고 체험해 더욱 잘 알고 있다면..


삶과 신앙의 본질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억지로라도 기뻐하자. 무슨 주문과도 같은 '주여!'를 애써 외치고 시끄럽게 기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만히 그분 생각을.. 이게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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