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승돈 Oct 29. 2020

우리는 모두 그 여자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요한복음 7:1)


잘 나가는, 또 힘 있는 서울 사람들이 시골 청년 예수님을 자꾸 죽이려고 해서 예수님께서는 본의 아니게 시골에 내려가 계실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죽이려고 했을까?


신변의 위협을 느낀 예수님께서는 초막절을 맞아 다른 이들과 함께 유대에 오지 않으시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홀로 조용히 오셔서는 성전에서 가르치기를 시작하신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요한복음 7:19)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7:23-24)


율법을 목숨처럼 여기며 율법을 집행하는  있는 자들, 옳고 그름은 딱히 따지지도 않고, 급부상하는 시골 청년에 단지 부담을 느낌으로써 결국 죽일 생각을? 하긴 동서고금에 이런 일이 어디 한두 ? 여하튼 이런 와중에 상황은  발생.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한복음 8:3-5)


명백한 범죄요 이에 대한 법의 처분도 매우 분명해서 무엇 하나 달리 따질 것이 없는데, 재판관도 아닌 예수님을 애써 거친다는 것은..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한복음 8:6)


뻔한 걸 물을 때는 답이 필요한 게 아니라 트집을 잡고 싶은 것. 유별나게 대답할 것도 없고, 또 굳이 대답하실 필요도 딱히 없는 상황일 것 같은데.. 하지만 예수님께서 뭔가 획기적인 대답을 멋있게 해 주지 않으시면 주위 사람들이 실망을 할 수도.. 과연 나라면, 얼마나 옳고 또 멋진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한복음 8:7-8)


무심히 계시다가 딱 한 마디 하신 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율법도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것이지만, 그 율법과 관계돼 시시각각 처하게 되는, 실은 매우 부조리한 상황, '(들키지 않은) 죄인이 (들킨) 죄인을 처벌할 뿐인, 이 이상하고도 어색한 현실'을, 바로 율법의 한계를, 저들의 양심을 통해 통렬히 고발해 내신 예수님.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한복음 8:9)


화인 맞아 기능하지 못하는 양심도 있는데 참 다행이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접근이었을지언정 예수님 말씀에 솔직히 반응하는 양심이 모두에게 살아있었으니.. 그러나 저러나 율법에 따르면 이 여인은 여하튼 돌로 쳐야만 하는데 이를 어쩌나?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한복음 8:10)


죄인이 죄인을 벌하는 것이 부조리하다면, 이 여자는 이제 사실 제대로 걸린 것이다. 사상 최초의, 유일무이한, 죄 없는 사람이, 그의 범죄 사실을 알고 그 앞에 서 있으며, 두 사람 모두, 이와 같은 경우 반드시 죽일 것을 명한 율법 공동체의 구성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8:11)


법은 법정신을 기반으로 한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시기도 한, 삼위일체의 예수님께서 율법의 기반이 되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보여 주셨다. 그것은 정죄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 그리고 회복.


죽는 게 마땅한 여자였다. 이 부분에 대해 조금의 환상도 가지면 안 된다. 요즘도 아니고 그 옛날 간음하다 걸린 여자다. 참작할만한 사정이 있어서 누군가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죽어야 하는, 그래서 곧 죽는 여자였다.


그리 가면 희망이 있을까 하여 예수님 앞에 달려와 도움을 청한 것도 아니다. 단 한 가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어쩌다 우연히 예수님 계신 곳으로 끌려오게 되었는데,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음에도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알아서 어떻게 척척척.. 이런 걸 교회에서는 은혜라고..


저들은 덫을 놓고 함정을 팠지만, 예수님은 이 와중에 구원의 시스템을 제대로 보여 주셨다. 벌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유일한 분이 벌하지 않으시겠다는데 일말의 자격도 없는 우리가 뭐.. 간음한 여자는 난데없이 목숨을 구했고..


우리는 모두 그 여자다. 예수님 덕택에 모두 살았다. 목숨을 구해 주신 분이 우리를 보내며 말씀하셨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 8:11)      



매거진의 이전글 교회? 장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