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이어폰 사용후기 그리고 성탄

AirPods Pro, Classic FM, and Christmas

by 최승돈

영국 라디오 생방송을 들으며 전철을 탄다. 이어폰엔 줄이 없다. 카톡 왔다고 전화가 알려 준다. 읽어 주겠다고도 한다. 휴대(!)전화기를 슬쩍 갖다 대고 개찰구를 통과한다. 일정비율로 요금 환급도 해 준단다.


운전한 지 36년 됐고 집에 컬러 TV가 두 대. 리모컨도 있다. 많다. 스타터 깜빡이는 일 없이 불이 켜진다. 열쇠 없이 문을 잠그고 연다. ('집을 본다'는 말을 아나?) 불꽃 없는 조리기구의 화력(?)이 어마어마하다. 세탁기 있다. (빨래판, 빨래방망이 아나?) 재봉틀은 없다.


1970년대 소년 잡지가 맞았다.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기능이 생각보다 훨씬 훌륭하다. 듣고 싶은 것만 집중해 들으며 드라마 또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된 양 하루를 산다. 여의도공원을 한 바퀴 도는 것도 한결 가뿐하다. 안내방송을 제대로 못 들어 내릴 곳을 놓치는 일은 아직 없었다. 2년 전 가족이 선물해 준 이 좋은 것을 왜 그렇게까지 아꼈을까? 그 시간이 아깝다. 많이 어리석었다. 다른 걸 갖고도 내내 그렇게 산다. ㅠㅠ




지극히 기쁜 소식을 전해 듣고 난 뒤 모퉁이를 돌아 당당하게 회사 입구를 향했다.


Hamish MacCunn의 The Land of the Mountain and the Flood. Royal Liverpool Philharmonic Orchestra의 연주였다. '스코틀랜드의 장엄한 산과 고요한 호수, 극적인 하늘이 어우러진 자연 풍경을 음악으로 그려낸 작품'이라는데 생전 처음 듣는 곡이 순간 내 기분과 펼쳐진 상황에 얼마나 잘 맞는지.. 이어폰 소리를 충분히 키웠다. 온몸으로 느끼는 절대 감동. 기쁨이 몇 배나 되었다.


영국 유학 시절 알게 된 Classic FM. 24시간 클래식 음악만 튼다. 하지만 진행자의 말투는 현대적이고 가끔씩 짤막한 뉴스도 한다. 광고의 배경음악도 클래식이거나 클래시컬한.. '내일(24일) 10만 파운드 로토 당첨자가 반드시 나온다.'고 한다.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어도 하루 종일 틀어 놓고 듣기에 정말 최적이다. 이내 클래식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Nothing says Christmas like Classic FM."


며칠 동안 크리스마스 음악을 계속 틀고 있다. 크리스마스 음악이 이렇게 많았는지 정말 놀랍다.


'크리스마스가 이제 개천절과 별다를 게 없다'는 시절을 이 나라에서는 보내고 있다. 어릴 때는, 젊었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12월 한 달 내내 교회를 들락거리며 즐겁게 성탄을 맞을 준비를 하지 않았던가? 그때 불렀던 노래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부르라면 제대로 다 부를 것이다.


그런데 그사이 과연 누가 성탄 맞이를 이렇게 어색하게 만든 것일까? 아직 다른 많은 나라에는 성탄 노래가 가득하건만..


어제와 거의 같은 지점에서 'O Tannenbaum'을 듣는다. 우리에게 '소나무야'로 잘 알려진 곡이다.


'..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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