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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Dec 20. 2020

수태고지 - 제대로 압도되다

From Embarrassed to Overwhelmed

수태고지는 흔히 기쁜 소식을 전하고 들은 것으로 얘기하곤 하지만, 실은 매우 황당하고 또 당황스러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일을 감당한 천사는 다른 천사와 달리 성경에 이름까지 소개될 정도로 특별히 막중하면서도 참으로 예민한 특수임무를 수행했음이 틀림없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누가복음 1:30-33)


수천 년 동안 성탄절 연극에 끊임없이 인용되는 멋진 카피로 천사는 예수님의 탄생을 선언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처녀인데.. 곧 결혼도 해야 할 터인데.. 한 사람을, 그것도 이 젊은 처자의 구만리 같은 인생을 어찌 망쳐 놓으려고..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누가복음 1:38)


똑똑한 여자였다면 따져야 했다. 요셉이 믿어 주지 않았으면 돌 맞아 죽을 뻔했다. 나중에 어린 애 잃어버렸다가 어렵게 다시 찾았다는 얘기는 있어도, 메시아 키우는 집안이라고 특별히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심지어 어지간히 키워놓았더니 집 나가 3년 동안 풍찬노숙. 결국엔 정치범으로 몰려 애써 낳은 지 33년 만에 굴욕적인 죽음을 맞기까지..


나는 마리아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이 엄청난 일을 제대로 다 이해해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부분을 묵상할 때마다 ‘우리도 마리아 같은 믿음을 갖고 절대적으로 순종하자’고 형편 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입을 모으곤 하지만, 이게 때마다 되뇌고 또 되뇐다고 해서 그냥 막 되는 일이 영 아닌 것 같은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믿고, 또 믿기 어려운 것을 믿는 게 믿음다운 믿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나는 수태고지를 순순히 받아들인 마리아의 믿음이 그렇게 기계적으로 느껴지기까지 순박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계적 순종을 원하시는 하나님도 아니시고.. 이를테면, 마리아는 솟구치는 순종의 의지를 마음껏 분출했다기보다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완벽한 섭리 앞에 제대로 압도되었던(overwhelmed) 것은 아닐까?


혹 하나님에 좀처럼 압도당하지 않으려는 고집과 교만이 내 안에 가득하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 가운데 온전히 압도되는 은혜를 떠올린다면.. 마라나타!




Angels are sent to unlikely situations with implausible messages leading to something far beyond expectation.


Merry CHRISTmas, angels!


천사는 놀라운 일로 이어지는 믿기 어려운 소식과 함께 상상치 못한 곳에 보냄을 받습니다.


천사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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