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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Sep 14. 2020

진지하게 살면.. 역사와.. 예수를..

라합은 엄밀히 말할 것도 없이 애초에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다. 오히려 적이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은 여리고성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라합은 그 성에 사는 이방 여인이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기생'이라고 소개돼 있으나 영어성경은 대놓고 ‘창녀’라고 소개하고 있는.. 그러나 라합은 적극적으로 이스라엘 정탐꾼을 도와 성이 공격을 당하는 중에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뼈대 있는 집안 젊은이와 결혼해 결국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누리기까지 한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히브리서 11:31)


성경은 다름 아닌 라합의 믿음을 이렇게 높이 사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전형적인 구원의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야말로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이 능력의 믿음은, 특히 라합의 믿음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요단 저쪽에서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여호수아 2:9~13)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로마서 10:17)는 말씀도 있지만, 여하튼 라합은 오고 가는 이야기를 유심히 잘 들었음이 분명하다.  듣는다고 하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정작 라합이 살던 때에는, 특히 라합이 살던 곳에는, 오늘날 우리가 말씀이라고 일컬을만한 것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모세오경의 저자, 모세가 세상을 떠난지도 얼마 되지 은 때였기에 실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딱히 성경이란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고.. 


혹 먼저 믿은 성도가 신앙의 핵심으로 공인된 내용을 검증된 전도방법으로 전한 걸 듣고 믿은 뒤 교회에 등록한 경우가 아니므로 이 믿음은 무효일까? 다름 아닌 성경이 극찬하고 높이 사는 믿음인데도? 아예 기독교라는 이름이 없을 때에도 든든하게 존재하시던 하나님을 믿는 귀한 방법은 애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이 세상의 오가는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관심을 가지는 데 있었다. 한마디로 하면 진지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진지하게 살면 역사와 통하게 되고 예수님하고 교류하게 되는 경험을 가질 거야. 그것이 아주 중요하지. 내가 영웅적으로 산 문제가 아니라, 역사가 그렇게 나를 끌고 갔지. 역사가 우리를 만들어 줘. 지금도 누워서 명동 동거우 언덕에 있는 나리꽃 생각이..” (문동환 목사, CBS 삼일운동 10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북간도의 십자가’ 중에서)


기독교는 주문 외우는 종교가 아니라고 교회 안팎에서 누구나 얘기하곤 하지만, 실은 주문 외우는 거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이를테면 단순 반복되는 (종교적 혹은 신앙적) ‘행위'가 구원에 이르게 해 준다고 믿는 것 ‘같은' 사람들이 매우 많아 보여서 문제다. 온 세상 가득한 하나님의 역사에 눈과 귀를 닫은 채, 실은 하나님의 뜻과 매우 다른 고정관념과 주문 아닌 주문 속에 파묻혀 가는.. 신앙을 가졌다면서도 역사에 무감각하고 실은 자기만을 섬기며..


정말 읽었어야 아실 테지만, 기독교 경전인 성경은 숱한 이들의 생각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옹호하거나 칭송하는 책이 아니다. (난데없이 이스라엘 깃발을 챙겨 들고 서울 시내 한복판을 활보하는 일부 노년 성도들께는 매우 죄송한 얘기가 될지 모르겠으나..)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독교인을 매우 혐오하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생각의 편리함을 추구하며 사시다 보니 쉽게 믿지 않으시겠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고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으나(출애굽기 19:6), 이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요 패역한 백성으로 결국 하나님의 책망을 많이 받은 백성이 되어 버렸고, 그들의 혈통을 통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심지어 대적함으로써 오히려 원수가 되어버렸다는..


신앙생활은 간단한 임의의 도식에 자기 편한 대로 마구 빠져드는 것이 아니다. 유통되는 도식 중에는 이렇듯 틀린 것도 매우 많다. 진지함으로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세상에 눈을 열고 귀를 여는 것. 그 가운데 역사를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 인도를 따라 순순히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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