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원칙적으로 현실과 체제를 초월해 있지만, 최근 형편을 보면 현실 교회는 철저히 체제에 종속돼 있는 듯하다. 다른 누구보다 체제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고..
'교회에 다닌다'는 말이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다'는 말과 철저하게 등식을 이룬 가운데 이른바 ‘부흥’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 나라 곳곳에 정말 큰 교회들이 아주 많이 서게 되었다. 이러한 눈부신 (외형적) 성장은 세계 기독교의 손꼽히는 귀감이요, 또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그러나,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사람을 모아낸 이단과 사교도 있는데, 단순히 숫자만 갖고 부흥을 평가할 일은 아닌 것도 같고, ‘(실은 아무리 하향세라 하더라도) 그래도 우리가..’ 하면서 내세울 무언가가 있어야 할 텐데 안팎의 판단과 평가는 매우 비관적이기만 하다.
교회가 잘하는 일, 그래도 교회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도무지 눈에 보이지 않는데, 교회는 여전히 양적 성장에만 주목하고 있(어 보이)고, 이 같은 일은, 영혼이야 있든 없든 하여튼 물건을 많이 만들어 팔아 큰돈을 벌고 보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꼭 닮아 있어 너무도 놀랍다.
어느 날 한국의 어떤 교회에서와 같은 큰 성장에 대해 열망을 가진 일본인 목회자 한 분과 만나 대화하다가, 부족한 일어 실력이지만,
“大きい教会は神様の夢じゃないかも知れません。(큰 교회는 하나님의 꿈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문장만큼은 애써 일어로 분명하게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체제를 선택하자’거나 ‘체제를 지켜내자’거나 하는 얘기는 애초부터 체제를 넘어서 있어야 할 교회의 목사님들이 하실 말씀이 아니다.
어떤 체제든 문제나 단점이 (있고 심지어는 수명도) 있는 법인데 교회 지도자들이 특정 체제에 철저히 종속돼 있으면 그 체제의 문제를 제대로 경책할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억지로 이해하자면, 이 나라 큰 교회가 이 나라 대기업을 너무나 닮아 있다 보니 이런 일도 있나 보다 할 수밖에..
그저 (이) 체제 이전에도 계셨고 (이) 체제 이후에도 계실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그분의 인도 가운데 그 뜻을 온전히 담아낼 교회를 기대한다.
감히 얘기하건대 내 신앙은 이 체제나 저 체제에 있지 아니하고 분명 그 너머에 있노라.
우리나라 기독교 신앙의 종주국(?) 같은 미국에 가면, 아주 유명한 큰(!) 교회였는데 망한 교회가 있다. 잘못 따라가면 망한다.
“교회가 잘하는 일, 그래도 교회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도무지 눈에 보이지 않는데, 교회는 여전히 양적 성장에만 주목하고 있(어 보이)고, 이 같은 일은, 영혼이야 있든 없든 하여튼 물건을 많이 만들어 팔아 큰돈을 벌고 보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꼭 닮아 있어 너무도 놀랍다.”
‘체제를 선택해야 한다’며 편향적 발언을 서슴지 않던 목회자가 있었다. 두루 큰 존경을 받는 분이셨음에도.. 본의 아니게 한국 교회의 진심을 들켜 버린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재확산에 큰 불을 붙인 어떤 교회가 있고 이른바 목회자가 있다. 대부분의 교회가 그 교회는 자신들과 매우 다르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 교회 목사를 대표로 한 한기총이 큰 문제가 될 때 한기총 문제를 대놓고 지적하며 과감히 탈퇴하거나 한기총 해체를 주장한 교단은 생각처럼 많지 않다. 또 적지 않은 교단이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들어보지 못한 ‘행정보류’란 특이한 상태로 여전히 이름을 올려놓고 있기도 하고.. 순진한 교인들은 아닐지 몰라도 영악한 교단들은 그들과 그렇게 애써 다르고 싶지 않은 존재들인 것. 이단 시비가 있던 자들은 오히려 새로운 회원이 되기도 하고..
오늘날 한국교회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꼭 닮아 있어 너무도 놀랍다.’ 함량 미달의 저가 신앙을 과잉 생산, 과잉 판매해 교회의 몸집만 부풀리고 있다.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No one was saved. - 비틀스의 ‘Elenor Rigby’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