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승돈 Jun 10. 2021

욥기를 다시 읽으며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처음 볼 때 매우 당황했던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장발장 얘기(빵을 훔쳐 복역 중인 주인공, 은촛대 사건, 마차를 들어 사람을 구한 시장 등)가 초반 10여 분 안에 다 나와 버린다는 것. ‘그러면 지금부터 남은, 이 긴 시간엔 도대체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하려고?’

뮤지컬을 아홉 번쯤 보고 나니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을 적어도 한 번은 읽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두꺼운 책을 사놓고 차분하게 읽기를 시작하는데 첫 장(章)을 다 읽어도 뮤지컬을 통해 보아 익숙한 내용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소설 1장은 은촛대 사건에 등장하는 신부의, 일종의 전기인 셈인데 뮤지컬은 이 부분을 전혀 다루지 않는다. 만약 원작만큼 세밀하게 뮤지컬을 만든다면? 분량이 너무 많아져서 거의 불가능하기도 하겠거니와 딱히 옳지도 않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욥기를 한번 제대로 읽어 보겠다고 나서면 대략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욥기 전체는 42장인데, 내가 아는 내용(의로운 사람 욥이 시험을 받았으나 시험을 잘 통과하고 결국엔 더 큰 복을 받았다는..)은 앞쪽 두 장과 뒤쪽 반 장, 합쳐서 두 장 반 정도에 다 들어 있다. ‘그럼 나머지 약 40장은 도대체 어떤 이야기란 말인가?'

아는 부분만 알 게 아니라 성경은 통전적으로 소화하는 게 바람직하니, 착실하게 3장, 4장을 읽어나가는데 이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보아하니 욥과 친구들이 논쟁을 벌이는 것 같은데, 이쪽이나 저쪽이나 딱히 틀린 말이랄 게 없어 보이고.. 그래도 욥이 주인공인데 '욥 얘기가 (조금이라도 더) 맞겠거니..'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정말 누구 얘기가 얼마나 진실 혹은 진리에 더 부합하는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고, ‘이 친구들이 도대체 뭘 가지고 왜 이렇게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지’ 결국 의문만 실컷 품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7)

욥기 가운데 (아마도) 가장 많이 인용되고, 많은 가정에, 또 많은 업소에 액자에 넣어져 숱하게도 걸려 있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도 아니고, 욥기의 주제도 아니다. 오히려 거리가 멀다. 실은 주인공 욥도 아닌 욥 친구 빌닷이 논쟁 중 내뱉은 그저 번듯한 수사에 불과하다. 표현이 멋있는지는 몰라도 맥락상 큰 의미는 없다. 문제는 이 수사에 우리가 너무도 많이 현혹된다는 사실. 사람들이 성경의 바른 맥락과 하나님의 온전한 뜻은 보지 못하고 그저 창대하고자 하는 욕심만 들켜 버리는, 실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욥은 실존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욥기는 통상 역사서가 아닌 시가서로 분류된다. 실존인물이 주인공인 문학작품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극본이라고 생각하고 각기 다른 사람이 등장인물별로 역할을 나눠 입체낭독을 하면 이해하기 더욱 좋을 거라는 조언을 들은 적도 있다. 확실히 그러하다.

장르에 따라 다른 글 읽기가 필요하다. 창대함만 쫓고 성경이 의도하는 맥락을 보지 못하면 욕심밖에 드러날 것이 없다. 또 결국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부족한 사람의 부족한 논리를 나열돼 있는 대로 너무 일일이 따지거나 공연히 마음에 새겨가며 접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 것이다. 욥기 대부분이, 우리가 늘 그렇듯, 뭘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그냥 그렇고 그런 수준에서 공연히 서로 따지고 싸우는 일이므로..

욥기를 처음 읽으면 놀란다.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은 이유로.. 두 번 읽을 엄두도 쉽게 나지 않는다. 하지만 바람직한 방법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 언제든 감상을 한번 제대로 하게 되면, 이 세상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인과론의 범주를 확 뛰어넘는, 신비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조금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엔 생각보다 재미있게, 또 빠르게 읽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