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승돈 Jun 30. 2021

에스더를 다시 읽으며

제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 (에스더 1:10~12)


‘좋은 결과에는 좋은 원인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 흔한 생각.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학살의 위기를 벗어나 결국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이 모든 일의 발단은 술 취한 왕의 명령과 그 명령을 거역한 왕비. 어떤 설교자는 ‘거 봐라. 술 마시고 취하기나 하면 이런 희한한 사달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 입장에서는 결국 이런 일을 발단으로 해서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에스더 4:14)


만약 에스더가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을 쓰시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적어도 모르드개에게는 있었다. 그런데..


좋은 취지나 좋은 노력 같은 것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사뭇 당연하고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걸 뛰어넘는, 인과론에 얽매이지 않는, 신비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9)


우리는 늘 이와 같은 자세로 살되, 에스더 도입부의 사뭇 엉뚱함 같은 것을 보며, 쉽게 가늠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의지하는 가운데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이 믿음을 갖고 힘차게 살아야 할 것이다.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령하여 말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에스더 2:10)


약자 혹은 소수자가 선명하게 정체성을 드러내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세상이 절대적으로 바람직하기는 하다. 그러나, 성경에 이와 같은 말씀이 있는 것은, 정체성 같은 것이 굳이 큰 문제나 관건이 되지 않을 때 굳이 이런 것을 애써 드러내며 공연히 전선을 형성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까? 선명성은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매사에 선명성 자체가 목적은 아니니까.. 결국 중요한 때가 오면 적절한 방법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며 민족을 구원하기까지 하는데..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 (에스더 2:21~23)


왕 암살 음모를 제보해 왕의 목숨을 구한 모르드개는 큰 공을 세웠지만 아무 보상을 받지 못한다. 모르드개가 섭섭함 끝에 과연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딱히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다. 별수 없이 그냥 그렇게 슥 지나가 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에스더 3장에서는 모르드개와 이스라엘 민족의 원수 하만이 오히려 화려하게 등장해 지극히 높은 위치에 오르게 된다. 모르드개로서는 몇만 번 억울해도 부족할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일이라면 다 괜찮다는.. 아니 단순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는..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왕이 이르되 이 일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하니 측근 신하들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에스더 6:1~3)


민족의 운명이 극도의 위험에 처한 상황. 에스더의 활약이 조심스럽게 시작된, 이 기가 막힌 상황에 왕은 갑자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 와중에 난데없이 살펴보는 옛 기록. 그런데 때마침 읽은 기록의 내용이 모르드개의 암살 계획 제보다. 왕은 이제라도 모르드개에게 보상을 해 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그런데 이 모든 일을 누군가 계획하고 그 계획에 맞춰 딱딱 실행에 옮기는 거라면 이건 도대체 누가 벌이는 일일까?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에스더 6:11)


하만은 이미 모르드개를 높은 곳에 매달아 죽일 준비를 마친 상태로 입궐을 했다가 도리어 모르드개의 이름을 귀하게 높이는 일에 본의 아니게 앞장을 서게 된다.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에스더 6:12~13)


씩씩거리며 잠시 집에 돌아간 하만은 모든 것을 직감한 아내의 조언을 듣게 된다. 이 묘한 흐름을 당신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에스더 6:14)


그러나 하만의 파멸을 작정하신, 철저하신 하나님은 하만이 이 조언을 미처 다 듣기도 전에 서둘러 운명의 순간으로 몰고 가신다.


보상이 더디어도 울컥하지 말자.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 안에만 있으면 더욱 큰 보상이 더욱 적절한 시기에 더욱 적절한 방법으로 닥쳐온다.


잘 나간다고 우쭐대지 마라.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면 이내 가장 비참해진다.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에스더가 이르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니 (에스더 5:3~4)


죽을 각오를 하고 왕과 대면한 에스더는 왜 정작 기회가 왔을 때 즉시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지 않고 두 번씩이나 잔치 초대만 하였을까?


큰 결단 끝에 맞이한, 천금 같은 기회에 대뜸 자신의 주장을 소신껏 펼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세상이 곧 내 마음 같이 돌아가던가? ‘빛이 있으라’고 할 때 빛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의 경우가 유일하다.


정말 다시 없을 기회라면 서둘러 자기주장을 펼치는 게 불가피하기도 하고 동시에 바람직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혹 여지가 있다면 그 여지를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Discretion is the better part of valour.' (신중함이 더욱 진정한 용기다.)


왕비지만, 엄밀하게는 정치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그것도 그 옛날 여자가 정치적인 의견을 그냥 막 펼쳐 놓으면, 말 못 하고 끙끙 앓는 것보다 낫기야 하겠지만, 그 뜻이 말처럼 실현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왕은 일의 내막에 애초에 큰 관심이 없고, 실력자는 한참 신나서 작정하고 추진하는 일인데 이것을 완전히 거슬러서..


큰 행사를 맡은 후배에게 어젯밤 조언을 한 마디 했다. 함께 하는 친구들에게 ‘잘해 달라’ 또는 ‘잘해 보자’는 얘기를 여러 번 한다고 해서 하고자 하는 일이 마구 잘 되지는 않을 거라고.. 일이 정말 잘 되는 것은 결국 같은 걸 꿈꾸고 그 꿈에 함께 꿈틀거리게 될 때일 거라고..


나름 옳은 주장을 힘써 펼치는데도 쉬 관철되지 않을 때 우리는 세상을 탓하기 십상이지만, 때로 나의 교만을 돌아보기도 해야 할 것이다. 소통을 위한 소통이 아니라 가능한 대로 여지를 찾고 인격적으로 충분히 공감한 뒤 함께 작심을 해야 무슨 일이든 온전하게 이루어낼 수 있다는..


내가 하나님이 아닌 이상 무슨 말만 하면 뭐든지 막 이뤄지는 게 아니다.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뭐가 돼도 된다.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이르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하니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에스더 7:8)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 하나님께서는 이것까지 이용해 하만을 끝장내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