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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Jul 11. 202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으로 많은 사람들이 암송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런데 제대로 설명하기는 좀..


우선 '실상'이 꽤 어렵다. 흔히 믿음은, 어떤 실상이 따로 있(다고 보)고 그 실상을 믿거나 말거나 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믿음이 곧 실상'이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또 간혹 '우리가 지속적으로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걸 보면 우리에게 실상(!) 믿음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식으로 기가 턱 막히게 풀이되는 걸 보게 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또한 그렇다. '믿음이란 게 보이지 않는 걸 어떻게 잘 증거한다'면 모르겠는데 '다름 아닌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니..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게 참 많은데 그 온갖 보이지 않는 것들은 다른 것 볼 것 없이 믿음이라는 개념의 존재만으로 입증 가능하다?' '믿음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인다?' 내게 이런 믿음이 없지 않다고 종종 생각하기는 하지만..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영어성경의 가장 굵은 뿌리이며 오늘날에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 흠정역(King James Version, KJV)을 찾아보면, 지금 묵상하는 이 구절이 영어 흠정역에서 우리말로 거의 직역된 결과라는 느낌을 매우 강하게 받게 된다. 우리말 개역을 애써 의지하지 말고 영한사전만 펼쳐놓은 채 이 구절을 다시 음미해 보면 어떨까?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체? 핵심? 질료? 근본? 근거?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     


'실상' 대신 ‘실체'나 ‘핵심’을 쓰면 어떨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의 실체요 핵심이다!’ 훌륭한 성도가 믿음을, 또 큰 믿음을 바란다고 볼 때 '우리가 바라는 것은 과연 믿음'이라면서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근거'는 어떤가? 영어 원문의 substance와 evidence는 운율을 맞춰 사용된 표현인데, 운율만 놓고 봐도 '실상'보다는 '근거'가 '증거'와 호응이 더 잘 되고 그 의미도 더욱 분명하게 와닿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근거요.' 다시 말해 ‘(뭔가를) 바란다는 것은 믿음을 근거로 한다, 즉 믿으니까 뭘 바라게 된다’는.. 해석이 훨씬 자연스러워지고 오해의 여지가 한결 줄어든다.     


그렇다면 '증거'는? '증거(evidence)'를 기준 삼아 '근거'라는 새로운 해석도 유추해 냈는데 이제 와서 '증거'를 다른 말로 바꾸기는 좀..

 

'증거'를 '증거의 결과나 수단'으로 보지 말고 '증거 행위'로 이해하면 길을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증거'를 '증거물'이기보다 '보증' 또는 '증언' 같은 '증거 행위'로 이해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것이 숱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일일이 증거가 돼 주어야 할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고, '믿음, 소신, 신념, 확신 등을 가진 사람은 갖은 보이지 않는 것도 힘써 증거한다'는 식으로 좀 더 자연스럽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지?    


다 합치면 어떻게 될까? '믿음은 (무언가를) 바라는 것의 근거가 되고, 또 보이지 않는 것을 인정하고 증거하는 일이니..' 즉 '믿음으로써 무언가를 바라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증거한다'는..


그런데 성경말씀을 함부로 건드리고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나름 엄밀하게 따져 보았지만 여전히 위험성이 있음을 느낀다. 내 수준에서 하나님 말씀이 자연스럽게 다 이해가 된다는 것도 어찌 보면 문제다. 내가 하나님보다 수준이 높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Now faith is confidence in what we hope for and assurance about what we do not see.  


'믿음은 바라는 것에 대한 확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증이다'. 영어성경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역본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에서 나의 고민이 이미 어지간히 다뤄지고 또 일정하게 해결돼 있는 것을 본다. 'substance' 대신 'confidence'를 사용함으로써 'evidence'와 같은 운율을 유지하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지는.. 우리말 '실상'으로 번역할 여지는 애초에 확 줄어듦과 동시에..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그 무언가를 확신한다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한다는 것이다.’


알쏭달쏭함 가운데 가득했던 말씀의 신비함이 –그래서 뭔가 좀 더 있어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조금은 허탈하게 사라진 느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이러한 해석이어야 이어지는 내용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고 믿음의 본질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믿음은 내가 바라는 걸 있는 대로 이루어 주는 신비의 주문 같은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에 근거해 바랄 것을 바라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착한 행실 가운데 드러내 증거함으로써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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