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그리고 험난함
결혼 5년 차, 기다림과 축복 속에 찾아와 준 나의 아이의 태명은 '뽀글이'라고 지었다.
뱃속에서 뽀글거림을 느껴서 첫인상을 그대로 태명으로 지었고, 태명을 부를 때면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 졌었다.
한 생명을 만나기 위해 뱃속에서 9개월 동안 품는 과정이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몸 상태와 모든 감각들이 어마어마하게 자라나는 경험이다. 많은 정보가 풍부하게 느껴지는 것을 넘어서서 널뛰는 감정과 예민함은 지금 생각해도 인체의 신비를 경험하는 듯했다.
그렇게 꽉 찬 9개월이 지나고, 출산 예정일보다 9일이나 더 품은 후에야 유도분만으로 내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와 내 아이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이겨내고 마침내 탯줄로 이어진 채로 내 아이를 실제로 끌어안은 그 순간은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경이롭고 벅찬 순간이었다.
경이로움도 잠시, 생후 이틀 된 내 아이를 데리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당혹스러웠다. 첫날부터 집 전체에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는 공포와 위기였고, 현실 육아는 상상보다 훨씬 더 혹독하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조리원이 없는 것을 우려한 나의 친정엄마는 이곳에 출산 직전에 방문해주셨고 덕분에 몸조리를 챙길 수 있었다. 내 아이가 생후 50일이 되고 제법 목을 가눌 수 있을 때쯤 나의 엄마는 한국으로 돌아가셨는데, 두려움과 동시에 이런 과정을 지나왔을 부모님이 떠올라 복잡한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친정엄마를 보낸 후 슬픔도 잠시, 남편의 갑작스러운 다른 지역 일주일간의 출장 소식을 들었다. 나는 고민 없이 아이 짐을 차에 한가득 실어 11시간 운전해야 하는 거리를 따라나서기도 하고, 웃지 못할 일들을 연이어 경험하며 점차 현실 육아에 적응해나갔다.
그 이후 나의 미국에서의 생활은 어땠을까?
막연히 동경해오던 잔잔하고 평화로운 생활이라고 해도 내면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번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렸다. 돌아보면 나는 꽤나 깊은 산후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런 마음을 느낄 때면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연결되어 애써 외면했다. 내 마음을 그렇게 방치하다 보니 속은 점점 곪아가고 감정은 블랙홀처럼 함몰되어갔다.
가끔은 아기를 재운 후 누우면 시간이라는 게 영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깜깜한 밤이 끝나지 않을 거 같기도 했고, 눈뜨면 다가오는 새로운 날이 까마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날들 앞에서 내가 뭘 해야 할지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들이 피어오를 때면 잠은 저만치 달아나곤 했지만 곧 내 아이가 깨어날 시간이어서 조금이라도 잠을 청해야 했다. 그렇게 눈을 감은채 누워있다가 깨어나면 수면부족이 누적되어 쉽게 지쳐가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보고 있으면 고단함은 잊히고 행복감이 차오르다가도 또 걱정과 불안에 짓눌리곤 했다.
스스로가 왜 이런 걱정을 키우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전혀 나에게 도움이 되지도, 답이 없고 영- 아닌 것은 너무 잘 알지만 끝내는 방법을 몰라서 며칠간은 파묻혀 지냈다.
어디에서 어떤 조건이든 간에 나의 마음가짐과 카메라 앵글을 어떤 기준에 두느냐에 따라 내가 느끼는 점은 천차만별이다.
나는 평소 불편하고 힘든 마음을 감지하지 못하다가 어떤 작은 싹으로 인해 감정이 진하게 증폭되어서 남편에게 거칠게 표현하기도 했다.
타임머신이라는 게 있다면 5년 전의 나에게로 가서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제발 초조해하지 말고,
두려워 좀 하지 말라고.
이제 막 인생 시작점이고
행복한 모습을 만들어가면 된다고.
그러니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겁먹지 말고
지금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이고
나중에는 제일 그리울 시간일테니
제발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라고.”
당시의 미래의 나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달라졌을까?
아마 그때의 나는 "뭐라고? 이렇게 힘든 지금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고???!!!" 라며 거품 물고 뒷목 잡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