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전환점
어느 날, 아이를 재운 후 남편과 오랜만에 둘이 식탁에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나는 내가 괴로워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두서없이 털어놨다. 아이로 인한 행복감과 별개로, 자꾸만 불안감에 휩싸이고 ‘나’라는 사람이 잃어버린 채 물먹은 솜처럼 푹 가라앉고 있다고.
내 이야기를 하고 나서 집 안을 감싼 공기가 유난히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때까지 원래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어떨 때 행복한 지, ‘나의 행복’이라는 것을 구체화한 적도, 들여다본 적도 없었다.
지금까지 해온 나의 선택들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모습이었는지 확신이 들지 않자, 나약한 근간이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것들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 오니 ‘온전한 나'라는 정체성에 대해 혼란기가 찾아왔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지 않으니 다시 일을 하고 싶은 건지, 정해진 휴직기간 안에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당시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회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선택지가 오히려 부담스럽고 걸림돌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이곳에 남아서 내가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감을 찾을 자신은 또 없었다.
그런 나의 고민은 고스란히 남편에게도 전해져 큰 무게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남편은 박사 과정을 시작한 지 4년 차, 이제 성과가 나와야 하는 시기여서 매일 절박한 심정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의 감정에 훨씬 더 매몰되고 집중해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한참을 침묵하던 남편은 무겁게 입을 뗐다.
자신은 박사학위를 완주하는 것은 하나의 수단이고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이 목표라고, 아무리 과정이라도 누군가 희생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선택은 의미가 없다고. 지금 당장에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에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리고 오랜 고민 후 마음을 결정을 한 거라며, 내일 당장 지도 교수에게 그만둔다는 말을 전하겠다고 했다.
그때서야 남편의 짙은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남편이 박사 학위를 중도 포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남편의 대답에 지난 4년이라는 시간이 예고 없이 불시에 사라지는 거 같았다. 순간 느낀 복잡한 심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고 남편이 오랜 고민 후에 무겁게 뱉은 말에 섣불리 나의 생각을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남편에게서 나 같은 나약한 모습이 보이는 거 같아서 미웠다.
처음 유학을 떠났을 때 커다란 백팩을 메고 힘차게 걸어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떠오르자 눈물이 흘렀다. 그때의 나는 나의 설움, 응어리를 극복하느라 남편을 다독여줄 힘이 없었다.
이튿날, 남편은 지도 교수에게 박사를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다. 교수는 남편의 말에 충격을 받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권유했고, 우리는 며칠만 결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인생의 멘토, 전환점
남편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미국에 있는 여러 회사 연구 인턴 포지션을 지원했다. 그때 운명처럼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외국계 회사에서 여름방학 동안 논문을 쓰는 포지션으로 오퍼가 왔다.
남편은 박사학위를 그만두기 전에 캘리포니아에서 3개월 생활하며 이곳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나도 우리에게 분명한 환기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돌아보면 우리 둘에게 이 시기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아이가 생후 7개월 무렵이 되어서 어딘가를 데리고 다닐 수도 있었고, 편리해진 도시 생활에 삶의 질이 훨씬 좋아졌다. 우연히 카페에서 그곳에 정착해있는 대학 후배도 만나고, 나의 언니들이 여행도 오고 시간여행이라도 한 듯이 꿈같은 시간도 보냈다.
남편은 인턴으로 다닌 회사에서 귀인과 같은 멘토를 만났다.
그는 'Garab'이라는 인도계 미국인으로 남편에게 진심 어린 호감과 확신에 찬 응원을 주었다. 그저 막막하고 어둡기만 한 긴 터널 중앙에 있는 남편에게 확신과 힘을 실어주는 멘토를 만나자 남편은 다시 분발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임시 거주하던 주택의 차고에서 매일 아침에 커다란 백팩을 메고 자전거로 출근을 하는 남편의 뒷모습에서 첫 유학을 혼자 떠났을 때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는 매일 아이를 안고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