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돌을 꺼내보기로 했다.
캘리포니아에 단기 체류하는 동안에는 잔잔하고 편안한 일상을 누렸다. 남편은 밤낮없이 하루 16시간 이상 일하며 새벽에도 연구 결과를 묻는 교수의 굴레를 벗어나니 몸과 마음이 평화로웠다. 이곳에서는 소위 ‘워라밸’의 삶을 누리며 자신을 신뢰해주는 멘토를 만나니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었던 부분들을 치유해나가고 자신에게 믿음을 다시 쌓아갔다. 인정과 존중받으며 일하는 일이란 얼마나 신이 나는 일인지를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남편을 지켜보며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채워갔다.
확실한 행복
우리는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고 주말에는 근교로 여행을 다니고 저녁에는 셋이 오붓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이런 소소하고 평범한 것임을, 그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니 울컥했다. 이대로 이런 '확실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생활이 쭉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정말 이대로 셋이 함께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 한편에 돌덩이 하나가 자리 잡은 거 같았다.
그렇게 한번 내 마음속에 들어온 돌은 시간이 갈수록 상념을 머금고 점점 덩치는 커져만 가고 떨쳐지지가 않는다. 그런 고민을 속에만 품고 있으면 점점 더 꺼내 놓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문제를 정면으로 쳐다볼 수 있게 내 앞에 내려놓으면 어쩌면 그 돌이 우리에게 징검다리가 되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행복'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대부분은 고단하고 지루한 현실들을 맞서고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돌을 앞에 꺼내보기로 했다.
어느새 3개월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캘리포니아를 떠날 무렵, 나는 남편에게 박사학위를 끝까지 해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라도 한 듯 나에게 고마워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이 짠하면서 내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이번엔 나에게 질문을 향할 차례였다.
행복과 욕망
낯간지럽거나 똑바로 직시하지 못했던 '나의 행복', 그때는 뿌옇고 이리저리 흩어져있던 것들이 이제는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몇 해가 지난 지금, 몇 차례의 고비와 우울감을 느끼는 긴 터널을 지나오며 깨닫게 되었다. 행복이란 얼마큼 행복한 일들이 내게 일어날까 하는 객관적인 조건이 아니라, 얼마큼 내가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 수 있을지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로 결정이 된다는 사실을. ‘이것’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조건이 충족하지 않아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능력. 이제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엄청난 재능임을 안다.
내가 원했던 어떤 조건이 막상 주어지면 행복은 찰나처럼 스쳐 지나가지만, 곧 또 다른 새로운 조건들을 필사적으로 충족해야 행복해진다고 믿게 된다. 그토록 원하던 행복한 조건은 금세 당연해지고, 이전과 같은 밀도의 행복을 다시 느끼려면 다음에는 더 강도 높은 것들이 나에게 와야 충족이 된다.
욕망을 충족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비슷한 듯 엄연히 다르다. 특정 조건들을 갖추는 것과 상관없이,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질은 별도의 독립적 성질이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것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다른 축이기 때문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욕망을 피하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해야 한다'라는 말은 겸손한 말이 아니다.
행복과 욕망은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둘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충족해 나가는 것이다.
-책 ‘자유로울 것’ 임경선
3개월의 인턴생활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블랙스버그로 돌아왔다.
캘리포니아의 생활이 터닝포인트가 되어 남편은 자신을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 것이 참 감사했다. 나도 나를 위한 선택을 할 기로에서 나를 멀찌감치 멀리 두고서 대화를 많이 했다. 매일 아이의 낮잠시간에 유모차를 끌면서 블랙스버그의 풍경을 가장 좋은 카메라인 나의 눈으로 실컷 담았다.
새로운 선택의 기로 앞에서 대게는 주춤하며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이곳에서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나의 친구가 나의 마음을 들여다봐주었다.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져있네요, 이미 결정한 거 같은데요?"
누가 뭐라 해도 답은 오롯이 내 안에만 존재한다.
내 안의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직접 발을 깊이 담가보는 것 말고는 다른 샛길이 일절 없는지도 모른다.
머릿속이 정리가 안되었을 때는 그 상황에 나를 집어넣어 보면 가장 확실한 리트머스지가 된다. 어디까지나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선택하고 행동을 일으켜야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나한테 이게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큰 용기인데, 마음이 어딘가에 향하는데 저 포도는 실 거라며 선을 긋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그러니 나는 내 마음의 돌을 멀리 던져서 마음이 향하는 쪽으로 징검다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