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생활이란

No pains, no gains

by 스트리밍


남편은 5년 반 만에 박사 유학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간의 연구실적을 발표하는 졸업 디펜스를 마치자마자 귀국을 위한 이사 준비, 취업 면접, 자잘한 일처리들로 유학생활의 이별을 느낄 새도 없었다. 코로나로 졸업식은커녕 동료들과 제대도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귀국하자마자 자가격리를 하면서 온라인 면접을 연이어 보고, 면접 결과를 기다릴 때쯤 박사 생활을 마치고 모국으로 완전히 돌아왔음을 체감했다.

자신의 꿈과 젊음만을 믿고 30대의 절반 이상을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날들. 사랑스러운 아이가 생겨서 가장 큰 행복감도 느껴보고, 반대로 가장 큰 좌절도 느껴봤다. 울고 웃었던 많은 날들을 돌아보면서 서서히 그곳에서의 기억을 과거로 흘려보내 줬다.

21.01.09 자가격리 해제 후, 2년 만에 눈물의 가족상봉



모든 분야에는 저마다의 힘든 지점이 있지만, 옆에서 지켜본 남편이 하는 연구란 ‘재능, 성실, 운’이라는 기본 요건들이 아주 깊이, 집요하게 요구되는 듯했다.

박사학위의 요건

박사학위를 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깊이 파고들 줄 아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과 자부심이 베이스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가 재능이 있다는 자부심도 중요하겠지만, 타인으로부터도 검증받은 '타고난 재능'도 분명히 필요하다. 선천적인 재능이 없다면 지루한 장기전을 지속하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소위 ‘엉덩이가 무거운’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체력과 더불어 ‘성실함, 꾸준함’은 기본이다. 책상에 앉아 타인의 연구를 모두 파악하고 타인이 건드리지 않은 자신만의 디테일한 연구분야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노력은 단순히 부지런함과 성실함의 영역에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도 필요하다. 그것은 끊임없이 배출되는 치열한 연구 시장에 자신만의 독창성을 찾아 나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마지막으로 "운", 운은 나에게 영향력 있는 존재로 인해 나에게 효과적인 도움을 주거나 적절한 타이밍에 나에게 기회로 다녀오는 것들이다. 남편의 경우는 박사학위를 그만두려던 시점에 만난 한 멘토가 귀인이 되어 변곡점을 맞았다. 가만 보면 '운'도 막연한 무형의 존재가 아니라 재능과 노력이 전제되어야만 행운이 내가 찾아오고 그것이 운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막막함 속에서도 긍정적인 기운이 있어야 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은 그런 기운에 저절로 이끌려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동전의 양면처럼 행운이 있으면 늘 불운도 있기 마련이다. 어디로든 나아가는 과정에는 불운이 틈새에 끼어있는데, 설사 불운이 자신을 움츠러들고 좌절하게 만들었다 해도 그것을 털어내고 다시 걸어 나갈 수만 있다면 다음에는 행운이라는 기운이 나의 등 뒤에서 힘차게 밀어주는 것이다.

'자신감'이라는 것은 어려움이 왔을 때 마냥 좌절하거나 열패감에 빠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넘어져도 다시 털어내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자신감이다.


No pains, no gains

하지만 말이 쉽지, 실상은 이 중 어느 하나만 갖추는 것조차 쉽지는 않다. 이 3가지 요건이 적절히 버무려져야만이 박사학위라는 자격증이라는 것을 쥐어질지가 작용하는 것인데 박사라는 길을 선택한 이상, 이 세 가지를 어떻게든 뚫고 가야 한다.

기왕이면 무언가를 시작했으면 완결하는 것이 좋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견뎌내고 무엇을 포기할지를 선별해 내는 것 또한 필수불가결이다. 모든 것을 견뎌내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가진 모든 자원들을 동원해도 박사학위를 완주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주변에서 아무리 도움을 준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본인이 스스로 움직여서 어떻게든 멀리까지 헤엄쳐 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미래에 섣부른 희망도 약속도 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묵묵히 견뎌내고 때로는 포기하는 것이 박사 생활의 숙명과도 같다.


박사학위 자체도 어려운 일이지만 박사학위를 하는 가족을 둔다는 것, 그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다.

무언가 견뎌내고 포기해야 하듯이, 유학생의 길을 따라나서는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가끔씩은 나도 학위에 대한 열망이 있었더라면, 같이 대학원을 진학해서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한다. 부부가 비슷한 상황에 있었더라면, 내가 겪는 어려움만큼이나 상대에게도 무게가 똑같이 있다는 것을, 서로가 더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이미 지나온 날을 돌아보며 가보지 않은 길을 상상해 보게 된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깊이 파고드는 일보다 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거치며 배우는 일이 더 의미 있고 즐겁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언젠가는 다시 내 일을 찾아 나섰을 것이다.


그렇다면 8년 전 남편이 처음 박사를 하고 싶다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답을 줄 수 있었을까? 다른 답을 줬다면 달라졌을까?


내가 내 삶의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듯 상대의 가치 또한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든 잃는 것도 얻는 것도 분명히 있다.

“삶은 할 일로 채워지는 것이지 안정과 성취는 실상 존재 않는 개념이다.”라는 말처럼 무언가를 선택하고 포기하고, 그것들을 반복하고 거듭해야 비로소 체득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

모든 일은 “no pains, no gain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