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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리밍 Jul 22. 2022

인내하는 마음에 대하여

가느다란 말총이 입체가 되기까지


어제 특별한 전시를 보았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핑계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한 시장 조사의 시간을 거의 하루 종일 내었다.

그중 가장 기대했던 스페인 브랜드 로에베(Loewe) 재단에서 주최하는 공예 전시를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장마와 폭염을 뚫고 외근을 나섰다.

로에베 공예박물관 포스터

정말이지 이맘때면 왜 매 년 더위가 갱신되는 느낌인지, 좋은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겠다는 의지만큼은 뜨거운 날씨만큼이나 열정이 더해지는 듯하다.

전시 자체는 공간이 생각보다 협소하고, 작품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작품 하나하나 QR코드를 통해 작가의 생각과 세계관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었고 감상하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총 30인의 작품들 중에서 한국인 작가가 무려 7명이나 되는 것도 자랑스러운데, 그중 대상을 수상한 '정다혜 작가'의 말총 공예 작품 앞에서는 한참 동안 시선이 머무르게 되었다.

머리카락처럼 얇고 생소해 보이는 소재의 작품은 빛에 따라서 반짝이는 것이 너무나 오묘했다.

정다혜 작가의 '성실의 시간’ 말총 공예 도자기

그녀의 작품은 말의 꼬리털 '말총'이라는 독특하고 생소한 소재로 한 땀 한 땀 따서 만든 작품이었다.

말의 꼬리라니, 그 소재로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너무 신기하여 그녀의 인터뷰 영상들을 찾아봤다.

그녀는 실제로 제주도에서 태어나서 대학때까지 조소를 전공하며 보냈고, 고향 주변 말 농장에서 말꼬리를 얻어 작업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소외되고 사라져 가던 말총 공예가 그녀의 성실하고 묵묵한 결과물로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수상을 한 그녀는 ‘자신에게 재능이 많지 않아서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그녀의 인터뷰가 나의 마음을 후벼 팠다.

 


"말총이 입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요령을 부리기보다, 하루하루 촘촘히 묵묵하게 엮어나가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저의 삶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나의 삶도 단단해지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특히 집중하는 시간은, 말총이 입체가 되는 것에 되게 집중하는 편이에요. 마음이 급해서 성글게 엮으면 입체가 안되고 형태가 다 망가져요.
어느 한순간이 아니고, 어떤 좋은 삶이 되는 것도 성실한 하루들을 모아야 멋진 삶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 '꾸준히 성실하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 그런 '꾸준함' '성실함' 이런 것들이 장인정신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삶을 살고 싶고 그런 방향성을 담아서 작품을 만듭니다"
"제대로 이룬 것도 없이 시간만 잘도 가던 불안한 시간을 보내면서 나도 할 수 있다고, 다 어설픈 나도 하나쯤은 잘할 수 있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가느다란 말총이 입체가 되는 것처럼, 그리고 입체를 만들기 위해 꽉 찬 시간을 보냈으니 그것만으로 작품도 나도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장인 정신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묵묵함, 성실함’이 아닐까.

 사람의 고독하고도 아름다운 작품 세계가 세상을 권태롭게 보는 시선을 정화시킨다. 그리고 내면이 단단하고 아름다운 젊은 작가를 마음속 깊이 응원하고 싶어졌다.


예술이라는 것이 세상에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더욱더 예술이라는 것이 소중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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