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을 행복하게 지지하기 위한 질문과 고민
올해부터 회사의 전반적인 제도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연간으로 사업전략을 세우고 연말 평가받는 제도가 반기 단위로 세우고 평가받는다.
1년 프로젝트가 6개월 안에 중간 단계라도 성과가 나와야 하니 모든 부서가 일정이 타이트해지고 분주해졌다. 굵직한 프로젝트는 충분히 들여다보고 유관부서와 협업과 협의를 해가며 연간으로 해야 할 프로젝트도 당장 성과를 내야 하는 분위기였다.
어찌 됐든 시간이 어떻게 흘러서 상반기에 해야 하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는 마무리되었고, 하반기부터 장기 사업 전략을 세우고 팀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팀 워크샵을 했다.
워크샵이 끝나고 가장 기억에 남는 키워드는 ‘우리가 하는 일, 역할의 재정의’ 었다.
내가 속한 디자인 업무를 하는 팀은 작년 사내 큰 두 브랜드는 조금 더 독립적으로 성장시키려고 '디자인센터'조직에서 분리되어 마케팅 조직으로 흡수되었다.
내가 있는 팀의 역할도 이름도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업무를 하는 팀이지만, 마케팅의 소속이 되니 크리에이티브 일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지가 내내 의문이었다. 비주얼 관련된 모든 것들은 ‘크리에이티브팀에서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우리를 충분히 신뢰하며 전문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이 주어졌다.
의문은 상반기의 큰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물을 보고하는 6월 초에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 프로젝트의 취지는 브랜드가 점점 채널도 활동도 다양해지는데 브랜드가 하나로 보이지 않는 문제점을 짚어서 일관된 디자인 언어, 비주얼로 보이도록 BI(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재정의하고 디자인 체계를 정리하는 프로젝트였다.
현재의 문제점을 정리하는 일은 새롭게 리뉴얼하는 작업보다 어찌 보면 더 어렵다. 그 문제점을 모두가 인식하고 공감대 형성이 없는 상태라면 더더욱.
최종 탑의 피드백 결과는 “시대가 이렇게 빠르게 변해가는데 이렇게 매뉴얼화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였다.
우리가 반 년동안 가장 주요하게 한 일 자체에 대해 원론적인 질문을 받으니 머리에서 쥐가 났다.
잘 정리되어 보이는 것도 좋지만 점차 예측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데, ‘디자이너’라는 일, 특히 인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역할을 하는 디자이너의 본질 자체에 대해 질문을 하는 듯했다.
어느새 한 해의 절반이 지났고, 하반기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우리 팀의 역할을 넘어 내가 하는 일, 일하는 나에 대해 돌아보기로 했다.
나는 디자이너라는 정체성으로 살아온지는 어언 15년 차이다. 지금껏 나는 '기획과 비주얼을 잘 구현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는데 점차 현 직장인으로서 직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내 일이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하는 일은 아직도 즐거워서 가슴이 뛸 때가 있고, 특히 내가 개발한 상품이 시장에서 반응이 좋을 때에 큰 희열감 느낀다. 찰나라도 즐길 수 있는 일이 직업인 것은 분명 축복이지만, 즐겁고 축복으로 끝나는 일이 아닌 가급적 내 일을 오래오래 지키며 내 삶의 가치도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더 깊은 질문과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시점에, 한 미디어에서 커리어 성장 플랫폼을 창업한 ‘헤이 조이스’의 이나리 대표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성공한 삶을 살아온 것 같은 그녀는 30대-40대를 걸쳐서 육아, 일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수없이 질문했다고 한다.
"왜 일을 하는 것인가?
내가 진짜 잘하는 것이 뭐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지?
난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지?
어떻게 살고 싶지?"
그렇게 대기업 임원 등의 named 생활에서 모든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만들어야 하는 단계로 옮겨간 그녀는 지금이 더 바쁘고 고되지만 치열하게 고민해서 지금까지 끌고 온 그녀의 삶은 한 번도 후회는 없었다고 한다. '후회 없이 사는 일'이란 때로는 주어진 일을 꾸역꾸역 하고, 잘 해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더 나아가기 위해서 꾸준히 나에게 질문하고 고민하는 일도 필연적인 듯하다.
"지금 나답게 살고 있나? 라는 고민이 든다면, 죽을 만큼 집요하게 계속 고민하라. 고민하다 마는 것보다는 백배 낫고, 그보다 더 나은 것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나침반은 나의 심장이다.”
무언가가 꿈틀대는 나에게 얘기해주는 듯했다.
'일'과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이 서로가 배신하지 않고,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도 그것이 내가 하는 일에도 유예되지 않고 오히려 보탬이 되도록, 결국 나의 일과 나의 삶을 행복하게 지지해주는 일을 끊임없이 고민해야겠다.
내 삶을 행복하게 지지하는 일 중 하나인 이곳에서 내 마음을 정리하는 것, 이것 또한 나의 고민을 조금씩 풀어가는 작은 과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