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정체성 찾기
난 대학교에서 운동권이었다. 1학년때 읽은 한국 현대사 책 속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분노를 느꼈다.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겁 많은 나는 항상 한 발 뒤로 물러났고 실천을 항상 고민하는 겁 많은 아이었고 하지만 좀 우쭐되는 소심한 청년이었다. 지금도 절친인 그 시절 우리 과 사회부장인 친구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얼떨결에 내가 사회부장이 되었고 그 자리는 많은 실천을 해야 하는 자리였다.
1991년 한 해는 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쇠파이프에 맞아서 죽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매주 서너 번의 집회와 도심에서의 데모가 있고 강의실은 거의 들어가지 못하는 서서히 운동권이 되어가고 있었고 20살 청춘이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졌지만 그 시절 가족처럼 지낸 공과대학 각과 사회부장이었던 9명과 공대사회부장이었던 선배와 우리가 노력하면 꼭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공대 동가들은 각자의 공간애서 다들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다. 몇 명은 대기업에서 몇 명은 중소기업애서 몇 명은 외국에서 일 년에 몇 번 보면서 지낸다. 그때는 가족들에게도 숨기고 참 열심히 살았다.
그 시절 나이트 가고 공부하던 과동기는 지금도 술 한잔 하면 나에게 “야! 넌 학교 다닐 땐 매일 재벌타도 와치던 놈이 이젠 대기업에서 왜 그렇게 사명감이 높냐? “ 이러며 놀린다. 그때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나 스스로 직장 속에서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얼마나 애쓰며 살았는지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꼭 설명해야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과동기들은 그랬다. 내가 회사 가더니, 학교에서 안한 공부는 다한다고 우스갯소리도 하곤 했다. 그런데 사실이다. 통신팀에 배치받아보니, 그 시절 나의 사수 선배로부터 랜케이블 설치부터 기계실 청소까지 시키는 일이란 일은 다하면서도 그 시절 시스코 네트워크장비 로그인 한번 못하면서 네트워크에 대한 공부를 매일매일 하려고 출력한 것만 1톤 트럭은 나올 것이다. 그 시절에는 보안이 그렇게 강조되지 않아서
출력종이나 도트프린터 큰 종이를 절단기로 잘라서 재사용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궁금한 건 많고 사수는 어렵고 그래서 과동기나 동문 게시판에 그렇게 질문이 많았나 보다. 인터넷도 초창기라 정보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팀장님께서 출력을 시키시면 그 시절에는 10부를 해야 하면 10장씩 출력해서 다시 순서를 맞추어야 하던 시절인데, 난 꼭 11부를 했다. 내가 출력해 주는 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그 문서에는 팀장급이 볼 수 있는 데이터가 있어서 난 출력을 시키면 그다지 싫지 않았다. 보고서 만드는 법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기술이나 기타 실질적인 정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회사에서의 업무는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윗분들이 지시 하는 것이기에 무엇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었다. 통신팀에 배치되어서 몇 달 먼저 입사한 동기는 벌써 네트워크 장비에 들어가서 선배 사수가 시킨 네트워크 구성을 하는데, 나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한 거 같다. 언젠가 다가올 네트워크장비와의 만남을 설레면서
그러면서 첫 만남이 1년이 넘게 지나서 이루어진다. 그것도 현대자동차써비스 지점망을 담당하는 메인 장비를 계동사옥 데이터센터에서 에서 원효로사옥으로 옮기는 업무가 맡겨줬다. 얼마나 설레던지, 그때는 오더를 받으면, 운영 유지보수하는 네트워크 전문가 ( 실제로는 나와 회사 입사동기인데, 부서 배치룰 네트워크장비를 많이 다루고, 고객사 현대계열사 전산실에 파견 나와서 네트워크장비만 다루는 분 ) 에게 다시 오더를 줘서 실제 작업은 그분께서 하는 관례가 있었지만, 정중히 부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네트워크 장비 모듈 설치와 제거, 그리고 내부적인 네트워크 세팅까지 내가 직접 할 테니, 옆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도와줄 수 있니?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수락을 했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만남은 철저한 준비에서 시작된다. 장비 재고가 없는 모듈이므로 있던 곳에서 제거하고 다시 이동해 설치해야 하는 작업이고 지금은 많이 사용하고 있지 않은 프레임릴레이방식으로 데이터 회선개통도 확인하고 모둘 장착 후, 회선을 모뎀과 연결하고 그 하나의 회선을 현대자동차써비스 전체 지방사옥과 다시 소프트하게 나누어서 연결해야 하는 작업과 신규로 추가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모든 장비 모양을 사전에 출력하고 그 모둘에 구성된 모든 세팅을 출력하여 모든 과정을 문서로 스케줄링하고 작성해 간다. 칼라프린터가 비싸지만 램프 색깔도 구별하기 위해서 선배 몰래 칼라로 준비했다. 준비한 후 나는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대로 시물레이션을 해보고 변수가 없다는 확신에 차서 D데이 저녁을 기다렸다.
계동에서 장비 모듈을 뽑기 전에 네트워크 구성을 복사해 두고 하나하나 진행된다. 원효로사옥에 도착해서 새로운 장비에 모듈을 설치하려고 하니, 허걱 기존 장비보다 모둘이 작은 장비인 거다. 이러면 사전에 준비한 새로운 구성파일을 그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당황해하는 나에게 운영전문가가 물어본다. 놀래서 이야기하니, 준비가 아주 좋다고 동기지만 전문가인 그친구가 칭찬을 한다. 새로운 구성파일을 새로운 모듈번호로 수정하고 새로운 장비를 구성해 가면서 지역본부, 사업소의 회선도 살아가고 네트워크상태가 정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전체 시나리오대로 시간과 절차대로 완벽하게(나의 기준으로) 성공했다. 그때의 짜릿함은 그 후 몇 번을 더 겪었지만, 처음의 그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다 끝내고 전화로 선배사수님께 “ 잘 처리했습니다. “라고 보고할 때의 느낌과 뿌듯함 때문에 모두 직장생활을 하는가 보다.
[사진 6, 그룹입사 동기들 기념품] 현대그룹 공채 입사 연수 후에 계열사별로 즉 현대정보기술 입사 차수가 6차까지 있었으니, 그중 3차 입사동기들 간에 만든 머그컵에 60여 명의 동기들의 이름을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