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3. 부서발령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by 청춘

현대그룹 공채로 입사하여 마북리 연수원에서 그룹공채 신입생들과의 2개월, 그리고 내가 선택한 1,2순위 현대정보기술에서 4개월을 공부만 했다. 교육 중에 수습기간 2개월이 지났고, 그룹연수 2개월은 현대그룹 모든 계열사에 합격한 신입사원들과의 연수, 그때 기억은 나와 같은 방을 사용했던 현대엔지니어링 신입사원인데, 아침마다 무스라는 것을 바르던 모습을 보면서 처음 본 그 물건에 호기심을 가지고 무엇하는 건지 몰라도 바르고 나면 직모였던 그 친구의 머리는 가지런해지는 마법이었다. 궁금한 나에게도 기회가 와서 발라봤더니, 나의 머리가 곱슬머리인 관계로 가지런해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때부터 나는 올백을 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그때의 머리가 5년 이상 유지된 것으로 기억된다. 그 친구와 또 다른 기억은 끼니때마나 나오는 고기반찬이다.

대학교 때는 용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넉넉한 용돈을 가진 나는 이래저래 저녁을 많이 샀고, 그 덕에 식사를 할 돈이 없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한 끼를 배 터지게 먹고 나머지 끼니는 먹지 못하던 기억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현대그룹 연수원에서 주는 매 식사마다의 푸짐한 반찬들은 왠지 대접을 받는 우쭐함마저 느끼게 한 거 같다. 나중에 한 사실이지만, 직원들에게 자기식구들에게 주듯이 식사를 대접하라는 선대 회장님의 경영마인드로 현대그룹의 모든 식당에서는 그렇게 제공되었다고 한다. 사실 밥은 현대자동차써비스 본사인 원효로 사옥 밥이 최고다. 회장님실이 있던 10층에 같이 있었던 식당에서는 정말 매끼 고기가 나오고, 그 메뉴를 본인이 원하는 만큼 가져다가 먹을 수 있었다. 어떤 때는 한우 소고기 갈비가 나오는데, 그리고 식판이 동그란 쇠판으로 되어 있어서 아무튼 신입사원에게는 재밌고 이야기할 것이 많은 시절이었다.

다시 부서발령으로 돌아가면,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 현대정보기술 연수가 끝나갈 무렵, 현대정보기술 본사 부서와 계열사 운영부서중에서 선택하도록 설명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 우리에게는 너무나 정보가 없었다. 본사부서가 무엇을 하는지, 계열사 전산실에서는 무엇을 하는지 그래서 이름이 멋있는 부서를 선택하는 동기들이 많았다. 울산 출신들은 울산에 있는 중공업 등에 지원하게 되었고, 나머지 지역의 동기들은 서울 본사나 본인 거주지와 가까운 석유화학 전산실로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인터넷사업팀라는 부서가 눈에 들어왔다. 그 시절에 PC통신 중에서 데이콤 하이텔과 삼성의 유니텔, 그리고 현대그룹의 신비로라는 브랜드가 있었다. 신비로 사업부 산하에 인터넷사업팀이라는 부서는 경쟁률도 심했고, 6명이나 뽑았다. 나는 절실했고, 다행히 붙어서 연수 마지막 주전에 현장 OJT를 위해서 강남에 있는 인터넷사업팀에 출근했더니, 헐~~ 영상캠을 판매하는 부서였던 것이다. 그때의 당황함은 바로 행동으로 나오게 된다. 같은 부서로 배치받은 동기와 합심해서 현대정보기술 그룹웨어에 있던 무기명 게시판에 “신입사원 부서배치에 문제 있다 “라는 글을 장문으로 쓰게 된다. 이 작은 행동이 회사를 움직이게 된다. 현대정보기술 인사실장이 마북리에 찾아와서 인사배치에 대해서 해명을 하고, 또한 그때의 시국이 IMF 발생 직전이라 그룹에서는 적자부서에는 신입사원 배치를 취소하고 본사에 배치된 우리는 다른 부서로 변경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렇게 배치된 곳이 현대자동차써비스 전산실이었고, 그때도 인사실장이 방문하여 설명한다. 철없던 신입사원인 나는 “ 어려움이 해소되면 다시 본사 부서로 희망하면 옮겨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 그때 인사실장의 표정은 참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기가 찼을까?

이렇게 두 번의 큰 에피소드와 함께 저는 현대자동차 써비스 전산실에 출근하게 된다. 원효로사옥이라는 곳에 지하철도 멀고 교통도 좋지 않은 곳, 하지만 정몽구 회장님이 첫 근무를 시작한 서울사업소 바로 옆에 있던 두 개의 사옥, 본관 7층으로 첫 출근을 한다. 전산실에서의 2주 OJT는 또다시 나에게 그 나이에 시련이 온다. 나는 대학교 때부터 내 동기 후배들을 보면서 본능적으로 개발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지만, 현업의 업무프로세스를 이해할 수 있는 부서가 전산개발 및 운영부서임에도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부서는 네트워크가 내가 선택할 유일한 부서라고 생각했다. 새롭게 부각되고 있던 기술이고 새롭게 도입되는 곳에서는 대학시절에 많이 공부하지 못한 부분을 극복하고 노력할 부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저와 같이 신비로사업부에서 배치받은 내 동기도 네트워크부서를 원했던 것이다. 그 친구는 강원도 출신이고, 개발도 조금 하던 친구인데, 왜 네트워크를 지원하는지 솔직히 물어보았지만, 어찌 되었건 우리는 원효로사옥 구름다리에서 선의의 경쟁을 약속하고 같이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1주일이 지나고 주말에 네트워크부서에서 놀러 가는데, 내동기만 데리고 가는 게 아닌가? 금요일에 그 말을 듣고 난 정말 절망에 빠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네트워크부서장께서 강원도가 고향이라는 이야기에 난 그럴 수 있지만 억울했다. 그리고 왜 나에게는 이런 시련을 주는지, 왜 내가 원하는 것이 회사에서는 한 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지 그 주말에는 친구랑 술만 엄청 마셨다.


그다음 주에 IT기획팀장께서 따로 면담을 한다. 기획팀에서는 그룹웨어도 도입할 계획이 있고 같이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 오신다. 하지만, 왜 그렇게 네트워크가 하고 싶었던지, 아니면 이 작은 인지상정을 난 용납이 안되었던지, 저는 네트워크를 하고 싶다고 끝까지 결론 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ㅎㅎ 그 모습이 혹시 네트워크에 배치하지 않으면 퇴사를 할거 같다고 결론 내렸는지 모르지만, 둘 다 네트워크부서로 배치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꿈, 국내 최고의 네트워크 전문가의 시작이었다.

이전 03화에피소드 2. 청춘의 생각과 먹고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