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이 공부하다
나의 첫 부서는 현대자동차 써비스 통신팀이었다. 97년 6월경 내가 배치받은 곳에서는 대기업이 많이 사용하던 IBM 호스트 기반으로 단말기는 윈도계열 PC로 교체되어서 IP 기반의 네트워크로 교체되는 과정에 있었고, 데이터와 애플리케이션이 들어 있는 IBM 호스트와의 통신은 SNA기반의 통신이었기에 TCP/IP기반의 PC와 연동하기 위해서는 프로토콜의 변환을 위해 게이트웨이가 그 역할을 하는 모양새였다.
OJT를 마치고 출근할 때, 선배님께서 체육복을 가지고 오라고 하신다. 무슨 운동을 하려고 하시나? ㅎㅎ 출근하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신입사원 3명은 기계실로 들어가서 기존에 SNA기반 통신을 위한 동축케이블을 기계실 바닥에서 제거하는 막일을 시키기 위함이었다. 헐, 왜 출근하자마자 이런 막일을 시킬까? 아무튼 동기들과 땀 흘려가며 바닥에 있는 굵은 동축케이블 제거를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되고, 그럼 우린 체육복을 입고 10층 식당으로 가서 막일 일꾼처럼 밥을 먹고, 다시 7층 기계실에서 막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 선배님들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도 장비의 생김새와 케이블의 모양, 그리고 기계실에 있던 네트워크장비, 항온항습기 등 실체를 기억할 수 있다. 사실 모든 것을 눈으로 봐야 그곳에 없더라고 기억할 수 있고 짐작을 할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자신이 가보지 못한 곳,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짐작을 하기 어려움이 있음을 선배들은 알고 시킨 걸까? ㅋㅋ 하지만, 다 이유가 있겠지 하는 맘으로 열심히 했다. 하지만, 기업은 일이 많이 있거나, 성장하지 않으면, 특별히 일이 없다. 찾아서 하기에는 아직 경력이 없고 시키는 일이 있어야 배울 수 있는데, 그다지 많은 일이 없어서 신입사원인 나는 무엇이든지 배우고자 그 시절 많이 다루던 시스코 장비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한다. 외국회사인 관계로 장비별 기술별 백서는 엄청나게 많았고, 공부할 과제는 넘쳐났다. 그래서 회사에서 출력물이 계속 쌓이고 영어가 약해서 공부하는 것도 녹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공부만 해서는 안된다. 실천을 해야 함을 모든 사람은 알고 있지만, 아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 아는 것은 실천을 통해서 몸에 체화되고,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생활이 바뀌고 삶이 바뀐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삶인 거 같다.
대학 때 데모만 하던 내가 물어볼 곳은 대학동기뿐이었다. 그래서 대학동기들 게시판에 질문을 자주 올리니, 친구들이 놀란다. 왜 승혁이가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 ㅎㅎ 모든 것이 생존 본능일까? 아니면 승부욕일까? 이유가 어디에 있던지 그 시절은 너무나 알고자 하는 열정이 강했다. 6개월 먼저 입사한 동기는 10여 년이 지나서 너의 모습이 무서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내가 꿈꾸던 네트워크 전문가의 꿈은 환경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있었다. 현대차써비스와 현대자동차가 합병을 하고 기아를 합병하면서 우리 부서는 네트워크 통합을 하게 되고, 이기종 간의 연결이 어려움을 알게 되고, 데이터센터 또한 3번을 이사하면서 우리는 좀 더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의 도입은 새로운 기술의 네트워크 장비를 도입하게 되고, 이를 통해서 새로운 것을 좋아하던 나에게는 새로운 장비를 도이하기 위한 테스트 업무가 자주 주어졌다.
로드밸런싱 장비, 기가 백본 네트워크 장비, 지점용 액세스스위치 장비, 인터넷 가상가설망 장비 등 거의 모든 새로운 장비의 도입에 대한 사전테스트는 나에게주었졌고, 정말 신나게 일만 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네트워크전문가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 너무 높은 목표를 세워서 가장 기본적인 자격증은 부서에서 제일 마지막에 취득하는 부끄러운 성과도 있었지만, 새로운 장비에는 새로운 기능이 있어서 항상 새로운 기능을 공부하고 적용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몰랐다. 세계적으로 제일 많이 팔리는 장비도 새로운 기능에는 버그가 있음을 몰랐다. 그래도 밤새 제가 구현해 보고자 하는 것을 묵묵히 기다려 주시던 선배님들 덕에 양재사옥에 가상네트워크를 통해서 부서 간 보안을 높이고자 한 나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왔지만, 지금도 감사함을 느낀다. 새벽이 되어서야 이제 그만하자고 하시면서, 그 시절 나이 많은 선배님은 나무라기까지 하셨다. 하지만 이기종 장비(기존 농협에서 설치해 둔 장비 )와의 연동에는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사실 몰랐다. 모든 네트워크장비의 표준을 그대로 사용하는 장비는 없음을 시스코에서 사용하는 장비 구성과 노텔이 사용하는 장비구성이 다르고 이는 이기종간에는 더욱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후배들과 선배님들과 밤을 새우면서 작업을 끝내고 난 후, 왜 내가 준비한 대로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한참을 지나서야 알게 된다. 인생이 그러하듯이 최선을 다해서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하고 실패를 겪고 그 실패를 계속해서 생각하다 보면 그 속에는 배움이 있음을 안다.
그이후 새루운 장비도입을 위한 기가비트네트워크 백본장비 테스트에서는 새로운 배움이 있었다. 장비 벤더별로 특징이 있으므로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전달하면 벤더 기술 전문가들이 각 장비의 특색을 가지고 우리에게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시스코 한국지사에서 창립멤버이자 스위치분야에서 최고하고 하는 분이 오셨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구성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른 구성 새로운 장비를 하나 더 추가하면 동일한 구성이 되는 구조였고, 공식적인 질의를 했더니, 시스코장비 스위치는 그 구성과 기술은 부재함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다른 벤더 기술엔지니어와 다른 솔직함에 감동한 적도 있다. 역시 기술 엔지니어는 고수가 되면 솔직함이 언제 어디서나 나오는구나. 기본적으로 벤더장비의 아키텍처를 이해하고 있으면 자기벤터 장비의 한계도 알 수 있고 좀 더 알아보겠다, 본사에 질의해서 답을 주겠다는 기존 방식을 떠나서 직접 확인하고 불가함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모습에서 자신이 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언제나 그 구조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자세가 중요함을 다시 생각합니다.
인터넷 회선이 늘어남에 따라, 회선이 추가되면서 자동적으로 회선대역폭을 사용하기 위한 새로운 프로토콜 적용도 한 가지이다. 그렇게 구성한 인터넷 네트워크장비 및 회선 운영을 후배에게 주었더니,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을 확인하면서 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후배인 것으로 생각 든다.
회사는 회사업무에 맞게 성향도 보는 거 같다. 대리진급 교육 시 연수원에 갔더니, 지금 세대에 유행인 MBTI 조사를 하더니 4개의 그룹으로 쪼갠다. 그리고 같은 과제를 줘서 리포트를 만드는데, 우리 때 과제는 남북통일이 되어, 비무장지대 개발프로젝트가 주어졌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주어지고, 4개 조마다 작성하여 발표하는데, ㅎㅎ 재밌다. 어떤 조는 어떻게 예산을 확보하고 어떻게 지출할 것인지 등등을 이야기하는 한편 우리 조는 동해 바다 위에 공항을 짓고 비무장지대에는 동물원과 사파리를 만들어서 전 세계 관광객이 방문하도록 하자는 등 어떻게 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근데, 선생님께서 각 조별로 발표하고 그 전기수와 그 전전기수의 조별로 발표한 자료를 보여주는 데, 모든 대리승진자 교육생은 빵 터졌다. 거의 동일한 모양새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틀리는구나,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잘하는 것을 시키겠구나. 하면 이해했지만, 몇 년후에는 이러한 조사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라는 뜻으로 알고 경영학 공부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