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큐레이터라 하면 미술 작품 골라서 꺼내놓고 전시하는 게 주 업무라 여겨질 때가 많다.
절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업무 3가지는 소장품의 연구, 수집, 보존. 전시는 이런 근본적인 업무가 쌓여 만든 일종의 결과일 뿐이다.
소장품의 연구, 수집, 보존에 해당되지만 세간에 덜 알려진 일상 업무들 몇 가지만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내가 좀 좋은 물건들을 가지고 있는데 미술관에 기증/판매해도 되겠느냐”에 답변하기
좋은 작품은 우리가 찾으러 다니지 알아서 굴러들어 오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나에게 연락을 한다면 불길한 예감은 틀림이 없고 열에 열이 100미터 밖에서 봐도 판별 가능한 가짜 거나 보존 상태가 형편없는 경우이다. 더 흔한 경우는 부모님, 친척 등이 이전 세기에 중국에서 사 온 기념품이다. 보통 사진도 없이 연락부터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다짜고짜 미술관으로 들고 오시는 분도 많다. 일단 사진부터 보고 제 의견을 말씀드릴게요, 하면 요즘 시대에 이런 저화질 사진을 찍는 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의 사진들이 온다. 핸드폰으로 찍어서 보내주셔도 된다 해도 달라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나도 처음엔 마음 약해서 이런 분들 쉽게 돌려보내지 못해서 애먹었다. 이제는 제법 기계적으로 대처한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답변은
“저희 동료들과 함께 검토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저희 미술관 컬렉션 전체 성격에 잘 맞지 않기 때문에 입수를 추진할 수 없습니다. 잘 맞는 곳을 찾아가길 진심으로 원합니다.”
가 있다. 그 외 할 수 있는 답변으로
“저희 미술관 규정 상 출처가 불분명한 유물을 입수할 수 없습니다. 더 상세한 출처 정보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정도. 이런 경우 당사자들도 출처 정보를 모르니 다시 연락하지 않는다.
2. 50년, 100년 전 유서, 사망보고서, 기증 문서 등 각종 법률서류 검토하기
우리 미술관은 매해 2, 3회 새로운 소장품을 입수한다. 미술관 수장고와 전시실은 한정되어 있는데 매년 이렇게 쌓이는 소장품을 감당하기 위해선 기존 소장품을 제적해야 한다. (소장품 제적 과정, 기준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향후 따로 소개할 예정) 제적 과정에서 필수로 거쳐야 하는 일이 유서, 기증 문서 등 각종 법률 및 세금서류를 검토하는 일이다. 미술관 법무팀에서 처음부터 알아서 해주면 좋겠지만 각 부서별 보관하는 문서의 양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초벌 검토는 큐레이터가 먼저 해서 보내야 한다.
검토하다 보면 1940년대든, 90년대든, 이 백만장자들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부모가 애써 모은 물건들은 골칫덩이로 여겨 원치 않고 오로지 트러스트펀드만 받고 싶어 하는 걸 볼 수 있다. 지금 내가 사들이는 물건이 누군가에겐 처분해야 할 골칫덩이가 되는 건 한 순간임을 깨닫는 중요한 업무이다.
3. 근래 사망한 기증자 사택 방문하기
미술관 주요 기증자가 유서에 이런이런 물건을 어디에 기증하라고 남긴 후 사망한 경우 유서 집행자나 유가족과 함께 사택에 방문에서 물건을 체크해야 한다. 유서가 갖는 법적 효력에 따라 무조건 다 거둬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고 선별할 수도 있는데 다행히도 전자의 경우는 최근 많이 드문 편이다. 이 역시 물질 축적과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는 중요한 업무다.
전시실에서 생기는 의외의 업무에 대해선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