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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하이팅 Nov 06. 2020

영화 속 맥주 한 장면 - 02 비긴어게인

그래야 마법이 일어나거든



늘상 술에 취해있던 음반 프로듀서 댄(마크 러팔로)은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의 공연으로 마법을 경험한다. 보는 이들 역시 댄의 귀와 눈을 빌려 함께 마법을 경험한 순간. 이후 맥주를 함께 마시며 음악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나누던 이 장면은 짧은 대화 속 둘만의 교감을 형성한다. 이들이 보여주고자 한 음악의 시작점.


출처 <Begin Again(2013)> 넷플릭스


- 내 노래도 취해서 들었어요?

- 당연하지. 그래야 마법이 일어나거든

- 무슨 마법요?

- 음악이 들려. 반주 같은 거, 그걸 들으려면 취해야 해.

- 혼자만 들은걸 보니까 확실히 취하긴 했군요.

- 네 노랜 좋아. 문제는 너잖아. 꼭 선머슴 같잖아.

- 사람들이 원하는 건 진정성이라고요.

- 잘 들어. 아티스트로서 네가 가진 진정성을 버리란 말이 아냐. 하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네 노래를 듣게 만들어야 해. 음악이 진정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고.







취기를 빌려 용기 낸 적이 있다. 상대에 대한 마음이라던가 서운함이라던가.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술을 빌어 꺼낸 말은 평소보다 서로에게 더 큰 상처로 남는 걸 잘 알기에 피할 수 있다면 그런 자리는 가급적 피해보려 노력한다. 


그런가 하면 약간의 취기가 아이디어를 샘솟게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다.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면 맥주를 항상 옆에 두고 있어야 하는데 내 역할에선 직접 마셔보지 않고서 그걸 표현하는 메시지나 이미지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한 모금, 두 모금. 맛에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지고 삼키면서 연상되는 단어와 색감을 하나둘 떠올린다. 드문 경우지만 어쩔 땐 관련된 이벤트들에 대한 아이디어가 샘솟을 때도 있다. 그렇게 사무실 책상으로 쪼르르 달려와 앉으면 마우스와 키보드에 좀 더 힘이 들어간다. 댄처럼 머릿속에 날아다니는 이미지들이 이미 내 모니터 화면에선 마법처럼 완성돼있는 거다. 취기가 가라앉으면서 마법은 사라지지만 그 후부턴 정말 내 손안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간다. 취기, 아니 마법의 힘을 빌려 그레타에게 손을 내민 댄. 그리고 다시 술을 마시며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우리는 안다. 댄의 마지막 대사로 하여금 곧 영화 속에서 펼쳐질 두 사람의 마법을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상상하게 된다는 것을. 그레타와 댄은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하며 마법을 부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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