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맥주 한 장면 - 09 해피투게더
다시 시작하자
"다시 시작하자"
다시 만나자며 손을 내미는 이도 먼저 떠나가는 이도 늘 보영(장국영)이었다. 반복되는 관계의 결말을 알면서도 항상 그가 내민 손을 잡아주는 아휘(양조위). 사랑의 크기는 보영보다 아휘가 더 커 보인다. 종착지 없이 매번 되풀이되는 관계의 결말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어김없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돌아간 보영, 그런 모습에 아휘는 그의 곁을 완전히 떠나버린다. 그 둘의 관계를 정리하는 데는 아휘의 결단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언제라도 돌아올, 항상 기다리고 있을 아휘가 더 이상 아니기로 한 것이다.
보영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난 아휘의 옆에는 평소 술을 나누며 위로를 건네던 장(장첸)이 있었다. 이 날도 어김없이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옆에 쌓인 빈 맥주병만 봐도 얼마나 긴 시간 대화를 나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를 떠나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에 갈 거라는 장의 말에 아휘는 그 끝에 놓인 등대엔 실연당한 사람들이 슬픈 기억을 두고 온다는 말을 전한다. 장은 슬픈 일이든, 행복한 일이든 무슨 말이라도 남기라며 녹음기를 건네곤 그를 위해 자리를 잠시 비워준다. 멋쩍게 웃으며 이를 받아 든 아휘. 그 속에 무슨 말을 담았을까.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의 눈에는 금세 터질 듯 눈물이 차오르고 결국 녹음기를 움켜쥐고 하염없이 흐느낀다. 마지막 이불을 끌어안고 눈물을 쏟아냈던 보영만큼 꽤나 잔상이 오래 남는 장면이었다.
출처 유튜브 omentie K 'Happy Together Clip in Ushuaia'- 옛날엔 정말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30대가 돼서 다시 이 작품을 보니 다르게 느껴지더라.
먼저 이 영화를 본 이가 했던 말이다. 비교할 예전의 해피투게더가 없다는 건 조금 아쉬운 일이었지만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30대의 내가 온전히 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꽤나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 영화는 모두가 말하던 보통의 사랑이야기였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 영화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이 영화를 보는 나도 성별은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사실 두 배우의 모습과 OST에 매료된 것도 크지만 나는 보영일까, 아휘일까. 어느 부분에선 공감되는 감정들도 참 많았다. 예전의 나라면 이 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30대가 되서가 아니라 뭐든 열정적이게 사랑에 빠졌던 그 시절을 지나 함께 있을 땐 당연하고 떠나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또 그걸 알면서도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많이 떠올렸다.
녹음기에는 어떤 말도 담겨 있지 않았다. 아휘의 흐느낌 속 슬픔과 그리움만 전해질뿐이다. 이제껏 먼저 꺼내지 못했던 '다시 시작하자'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힘들 걸 알면서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그걸 밀어내고 싶은 여러 감정들이 충돌하며 쏟아진 눈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함께 가기로 했으나 함께하지 못했던 이과수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들처럼 복잡한 감정들을 눈물로 왈칵 쏟아내며 되려 후련함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시작하자. 이 말을 꺼내는 순간보다 지금 우리가 함께인 이 순간에 행복한 것들을 시작해보자. 는 말을 꺼낼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라며. 글을 쓰며 반복해 들었던 해피투게더의 OST 'Happy together'를 다시금 재생해본다.
For all my life
When you're with me, baby the skies'll be blue
For all my life
내 평생 동안
너와 함께 있으면 하늘은 늘 푸를 거야
내 평생 동안
Me and you and you and me
No matter how they toss the dice, it had to be
The only one for me is you, and you for me
So happy together
나와 너, 너와 나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지, 우린 운명이야
나에겐 오직 너뿐이고, 너에겐 나뿐이야
그럼 함께 행복한 거지
https://www.youtube.com/watch?v=UJ-qLvBMBx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