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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하이팅 Dec 01. 2020

영화 속 맥주 한 장면 - 08 굿 윌 헌팅

같이 한껏 취하며 웃는 것도 좋아. 하지만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봤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온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 주연 배우들의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마이크를 집어 든 박혜수의 독무대가 끝나고 다른 두 배우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뒤이어 고아성은 이렇게 말한다.


"혜수야.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쑥스럽지만 내심 뿌듯해하는 박혜수의 표정 뒤에 나는 고아성이란 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참 별거 아닌 말인데 듣는 이로 하여금 자존감을 높여주는 단어였달까. 본인을 응원해주는 둘이 있었음에 박혜수는 든든했을 테고 그렇게 뿜어져 나온 셋의 에너지가 청춘 드라마처럼 풋풋했고 참 보기 좋았다.




 윌(맷 데이먼)의 하루는 절친 처키(벤 애플렉)가 그의 집 문을 두드리는 것부터 시작된다. 차를 타고 이동해 친구들과 일용직으로 일을 하고 미식축구를 보다가 맥주를 마시며 일과를 채운다. 윌은 가끔 어려운 수학 문제를 보면 눈이 반짝거리지만 이대로도 괜찮은 삶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삶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본인 빼고 다 아는 재능을 왜 썩히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윌은 이대로 만족하는 걸까. 스스로 뭘 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이 생활이 자기가 꿈꾸는 삶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 교수의 말처럼 어쩌면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적응하기 어려워 스스로 만들어낸 방어기제 같은 건 아니었을까.


 굿 윌 헌팅은 윌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했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회복하는 과정과 이를 토대로 스스로 첫 선택을 해보기까지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 과정에서는 주변 인물들이 큰 작용을 한다. 윌의 선택에 숀 교수만큼이나 큰 영향을 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았을 한 씬이 있다.


 의식을 하고 살펴봐서 그런지 영화 내내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윌 일상에 많이 놓여 있는데 그곳엔 늘 처키가 함께 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을 하던 중 맥주 한 캔을 나누던 윌과 처키. 윌은 캘리포니아로 떠나간 여자 친구와, 교수님들에 대해 말하며 지금 친구들과 함께 하는 삶 그대로 머물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윌을 보며 처키는 친구로서 말을 꺼냈다.



출처 유튜브 <굿 윌 헌팅>



"친한 친구니까 한마디 할게. 20년 뒤에도 여기서 살고 우리 집에 미식축구 보러 오고 노무자로 있으면 죽여버린다."

"넌 재능이 있잖아. 너 같을 수만 있다면 난 뭐든 참을 수 있어."

"물론 매일 아침 너희 집에 들러 너를 깨우고, 같이 한껏 취하며 웃는 것도 좋아. 하지만 내가 하루 중 언제가 제일 행복한지 알아? 차를 세우고 너희 집 현관까지 가는 10초 정도의 시간이야. 문을 두드려도 네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안녕이란 말도 작별의 말도 없이 네가 떠나버렸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내가 아는 건 별로 없어도 그것만은 확실해."



 다 마시고 난 빈 맥주 캔을 차 위에 올려두고 안전모와 장갑을 챙겨 자리를 떠나는 처키. 와 저 친구... 얼굴도 훈훈한데 맘씨도... 윌은 참 대단한 친구를 두었네. 그나저나 나한테도 저런 친구가 있었나? 글쎄. 내가 먼저 저런 친구였을까... 뒤이어 숀 맥과이어와 제랄드 램보 교수가 언쟁을 높이는 장면과 목소리들은 머릿속을 채운 이런 생각들로 희미하게 퍼져나갔다.


 친구의 장점에 질투가 생길 수도 있고 때론 이 질투가 좋은 자극으로 이어져 선의의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 허나 질투와 시기로 똘똘 뭉쳐 이도 저도 아니게 끝나는 관계도 대다수다. 다소 거친 표현들이 섞이기도 했지만 처키는 자기와 다른 재능을 가진 친구를 질투하고 깎아내려는 것이 아닌 인정하고 격려하는 태도를 보인다. 작별의 말도 없이 훌훌 떠나버리더라도 자신은 탈출조차 꿈꾸지 못하는 이 삶을 벗어나 본인을 위한 앞 날을 펼치길 바라고 응원한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고아성과 처키 같은 사람이었을까. 아무 생각 없이 뱉어낸 자랑스럽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러기 쉽지도 않다는 걸 잘 안다. 너의 앞 날을 위해 쿨하게 날 떠나도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상대적인 박탈감도 컸을 텐데. 글쎄... 너무 많은 생각은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격려하며 입 밖으로 꺼내는 연습. 그것부터 시작해보자. 작은 한 마디가 차곡차곡 쌓여 친구뿐 아니라 스스로도 단단해질지도 모를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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