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에 남는다는 건 낭만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부산, 여기서부터

by 승하이팅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났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 공백을 외국 관광객이 채우고 있다.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거나,

일할 곳이 없다거나,

문화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

지역에 살면 지독하게 듣게 되는 말들이다.


하지만 내가 로컬에서 시간을 보내며 가장 어렵게 느꼈던 건 그런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남아야 한다는 이유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다.

왜 여기서 시작했을까.
왜 이곳에 남아 있을까.
계속해서 있을 가치가 있을까.





작년부터 내가 집중하고 있는 작업은 양조장의 브랜드 자산을 정리하고, 우리의 핵심 메시지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사업을 준비하던 초기에 써두었던 글들을 다시 읽으며,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과 운영하며 달라진 관점을 함께 들여다본다. 해서 운영을 하면서도 요즘은 글을 쓰고, 고치고, 다시 덧붙이는 조금 긴 반복의 시간 속에 있다. 올해는 우리 안에서만이 아닌 밖으로 꺼내는 작업들도 할 예정이다.



우리는 ‘양조장’이다.


한때는 소개하는 자리마다 ‘브랜드’라는 말을 자주 썼다. 입에 자연스럽게 붙기도 했고, 속으로는 ‘나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이야’라는 마음이 크게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양조장이 하는 일이 단순한 제조나 홍보, 영업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더 분명히 알게 됐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직접 빚고, 발효시키고, 실험한다.

그래서 지금은 의식적으로 '양조장'이라는 말을 쓴다. 술뿐 아니라 문화와 이야기,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도 곱게 빚는다는 마음으로.



속도를 선택할 수 있는 곳, 부산


한동안은 ‘이다음 단계로 서울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시장 크기나 기회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생각이었으니까. (아직도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


부산에 터를 잡고 지낸 시간도 꽤 되었는데, 요즘은 이 도시가 예전보다 생명력을 잃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웃, 대표님들의 낯빛이 하나둘 어두워지는 걸 보며 동네와 지역의 에너지는 나 혼자 잘한다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점점 더 실감하게 됐다.


그 시기에, 한 대표님과의 통화 끝에 들은 한 문장이 오래 남아 있다.



승하 씨, 왜 부산 다음이 서울이야?
뉴욕이 될 수도 있고, 도쿄가 될 수도 있잖아.



그 말을 듣고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꼭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내 말이 들리는 범위를, 어떤 형태로, 어떤 방식으로 넓혀갈 것인가" 이는 우리가 뛰어놀 수 있는 시장과 타깃의 크기를 어떻게 볼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했다.


부산은 우리에게 자극의 도시라기보다 속도를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익숙한 루틴과 관계망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방식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왔다. 다양한 제조와 창작을 실험할 수 있는 여유도 있다. 그 안에서 우리의 방식과 철학은 더 단단해졌고, 현장에서 반응을 빠르게 관찰하고 응용하는 감각을 키우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꿀꺽하우스를 바깥으로 데려간다.


서울에서의 행사, 새로운 창작자와의 협업, 어디로 튈지 모르겠는 예측할 수 없는 만남들. 이런 외부의 자극은 우리가 익숙한 리듬을 벗어나 다른 결을 만들고, 더 성장하도록 이끈다. 덕분에 때로는 더 실험적으로, 때로는 더 단순하게 상황에 맞게 유연해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작년부터는 뉴욕에 있는 양조장과의 협업, 일본 농부님, 싱가포르 F&B 등 이전 방식과는 다른 흐름과도 부딪혀 보고 있다. 마냥 낙관하기보다는 그 관계를 꿀꺽하우스만의 언어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조금 더 단단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부산에 기반을 두되, 우리술을 통해 감각적으로 다른 도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방식. 지금 우리는 그것을 실험 중이다.


중요한 건, 어디로 갈 것인가 보다 어떤 상태로 확장될 것인가다. 우리는 물리적인 이동보다 우리술을 매개로 한 다양한 문화, 메시지의 전파력, 감각의 확장 가능성을 고민하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꿀꺽하우스는 점점 더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을 잃지 않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물론 빠르게 변하는 기술과 방대해지는 정보의 속도 앞에서 가끔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부터


결국 꿀꺽하우스는 사람으로 출발한 공간이다. 양조장은 부산에 있지만, 우리의 이야기와 술, 감각과 태도는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다. 매주 팀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부산이라는 깊이의 공간을 지키되, 고여 있지 않기 위해 변하고 개선하자고 한다.


이건 사실 이름을 처음 지을 때부터 내내 했던 말이기도 하다. 꿀꺽하우스는 지금, 여기에 있지만 우리의 다음은 어디든 어떤 형태로든 될 수 있다.



기회와 새로운 형태의 성취로 갈 것인가 vs 삶이란 무엇인지를 깊게 성찰할 것인가

내 삶에서 무엇을 더 중요하게 둘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깊게 성찰하는 쪽을 택하되, 그 시간을 새로운 형태의 확장으로 이어가고 싶다.


로컬에 남는다는 건 낭만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일은 결국 이 도시를 한 번쯤은 진지하게 사랑해 보기로 결심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부터,

그리고 나는 이 도시를

다시 살아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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