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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호 Jul 14. 2023

'언품'에 대해

'말의 품격'을 읽고

말을 잘하고 글쓰기를 잘하는 멋쟁이가 되고 싶었다. 뭐 하나라도 잘하는 멋쟁이가 되고 싶었다. 30대 중반 정도 되면 자연스레 멋쟁이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깨달았다. 말만 예쁘게 해도 충분히 멋쟁이가 될 수 있음을.


사회 초년생이던 5년 전에 처음 읽었던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을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 공감 가는 부분들이 정말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공감되었던 것은 ‘언품’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장 먼저 보이는 외적인 부분보다 관심 있게 보는 것은 그 사람의 단어 사용과 순간의 재치를 본다. 그 사람의 말에서 살아온 인생과 삶에 대한 태도가 느껴진다. 여유로움과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입만 열었다 하면 불평, 불만에 부정적인 단어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잘하는 것 하나 없지만 엄청나게 노력하는 것이 있다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자 말을 최대한 아끼고, 외모와는 다르게 말을 예쁘게 하려고 의식적인 상태를 유지한다. 간혹 무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과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둔다.


같은 말이라도 상대방과의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가령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공부는 안 하고 건강만 하던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진학 전 겨울방학 때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에게 말 한마디 건넸다. “내가 공부하면 너네 성적 이길 수 있겠지?” 앞에 있던 친구들이 뒤를 돌아보며 “X신, 네가 날 어떻게 이겨”, 다른 친구는 “잠이나 자고 축구나 해”라고 하며 씩 웃고 돌아서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구들이며, 그 당시에도 친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될 수 있었겠지만 감사하게도 친구들의 ‘말의 힘’ 덕분에 자극을 받아 고등학교 2학년 진학하자마자 학급 반장도 하고, 1학기 중간고사 내신에서 문과 전교 4등이라는 성적을 받았다. 가문의 영광까지는 아니지만 내 인생에서 첫 번째 성취감이었고, 아마 그때부터 ‘나 같은 사람도 무언가 하고자 하면 성공까지는 아니지만 성취는 되네’라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의 사소한 말 한마디로 인해 성적이 향상되었고, 성적이 향상되니 ‘교사’라는 꿈이 생겼고, 결과적으로 ‘교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사범대에 진학하여 학원 강사, 과외, 교육실습(교생 1개월) 등 많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언품을 이야기하다 보니 상대방과의 관계의 중요성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같은 언어,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서로 간의 관계에 따라 받아들이는 입장이 다를 수 있는데 이는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이가 좋을 때에는 서로 간의 ‘장난’, 사이가 틀어지면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곤 한다. 폭력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게 맞다. ‘칼로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물면 낫는데 말로 베인 상처는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평생 기억에 남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너나 할 것 없이 ‘언품’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근자열 원자래’(近者悅遠者來)라는 말에 공감을 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모여들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 즉, 같은 사무실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는 부서 직원, 팀원들에게 좋은 ‘언품’을 보여 내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 사람의 언품이 함께 근무하지 않는 타 부서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기주 작가의 「말의 품격」을 다시 읽으며, 지난날의 나의 모습을 반성하기도 하고, 잘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셀프 칭찬을 하면서 물 흐르듯 책을 넘겼다. 서로 간 입장을 한 번 바꿔놓고 생각해 보자는 의미의 ‘역지사지’는 《맹자》〈이루〉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말이다. “내가 만약(당신과 같은) 그러한 처지였으면 나 역시 그랬을 것이다.”라는 뜻인데 앞으로는 무조건 '역지즉개연'의 마음가짐으로 삶을 대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의 처지를 위로하는 척, 배려하는 척하는 삶이 아닌 ‘인간의 입술은 그가 마지막으로 발음한 단어의 형태를 보존한다.’라는 말처럼 나만의 ‘언품’을 보존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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