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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ul 07. 2023

결핍 속에서 피어나는 毒花

벼랑 끝에 내몰아 내 마음도 알지 못하게 한다


너무나 보고 싶어 전속력으로 달렸다. 

 순간! 눈앞에서 사라져만 가는 형태 없는 그것. 만지려 할수록 인어공주 마지막 순간의 물거품처럼 사라져 갔다. 매일 새벽,  눈을 뜨면 2평 남짓한 공간 속 허리를 아작 낼 것만 같은 침대에 누워있다. '어제와 똑같은 새벽'이란 생각에 온몸을 떨었다. 벽에 붙여 놓은 영어단어 50개를 외우고 세수하러 가야 한다. 그렇다. 그곳은 방음 사치인 고시원이었다.


2년을 고민했을까. 3년을 고민했을까. 고민만 몇 년을 한지 모를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2004년 10월 31일에 퇴사를 했다. 11월 1일에 고시원을 잡아 들어가 버렸다. 공백이 생기면 이직을 준비할 것만 같았다. 학원의 모든 과목을 한번 돌면 2 달이었고, 대부분 한 번 더 듣는 게 수순이라며 4개월을 기본으로 잡았다. 그러나 나는 몇백 안 되는 퇴직금으로 버텨야 했기에 딱 한 번만 듣자고 2개월짜리를 끊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냐고 물었던 학원 관계자의 눈빛을 기억한다. ‘경찰시험공부 초짜가 강의를 딱 한번 듣겠다고? 무슨 배짱이지?’


고시원 근처의 식당 아침밥은 따뜻했으나 식당 안은 한기가 흘러넘쳤다. 시간이 아까워 식당 탁자에 미리 준비해 둔 포스트잇을 붙여두고 밥 한 숟갈, 암기한 줄, 국 한 숟갈에 암기한 줄 눈알은 쉴 새 없이 굴러다녔다. 그곳은 그런 풍경이 일상이었다. 심지어는 학원 화장실에서 김밥 한 줄을 미친 듯이 해치우고 나오는 여자 수험생도 보았다. 그곳은 마치 침묵의 전쟁터였으며 오직 ‘합격’만이 그 지옥에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출구였다.


합격 출구 나기 위해 핸드폰도 정지시키고, 필요할 때만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했다. 고시원의 방음이 거슬려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에는 옆방에 찾아가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죄송한데 전화통화는 밖에서 해주시면 안 될까요? 집중이 잘 안 됩니다. “라고 어금니를 꽉 다물고 이야기를 했다. 문제집 읽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이해도 못하면서 눈동자를 죽- 죽- 죽- 축구공처럼 굴려댔다. 나중엔 어지러워서 눈을 감아버리기도 했다. 길을 걷는 시간도 아까워 엠피쓰리에 외울 것들을 내 목소리로 미리 녹음해 뒀다가 듣고 또 듣고 나중에는 입으로 똑같이 나올 때까지 들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날이었다. 남자친구는 당연히 없었기에 그날 ‘형사소송법’ 보강을 위해 9시 수업임에도 아침 7시부터 나와 3번째 줄에 섰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계단 쪽에 바깥바람이 계속 들어오면서 너무 추워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발이 시려 동동거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8시가 넘었을까? 어느 순간 발에 감각이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발을 툭툭 쳐보니 정말 감각이 이상했다. 이런 게 동상이었던가? 주말이라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일단 가방을 내려놓고 뒤에 있던 남학생에게 자초지종을 설명 후 냅다 밖으로 뛰었다. 그냥 노량진 한복판을 봄날에 미친년처럼 뛰었다. ‘감각아 돌아와!’ 늑대 울부짖음처럼 가슴으로 울며 100미터 달리기를 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멈췄다. 어느 순간 발에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신이시여! 당신은 내 편이군요’ 종교도 없는 사람이 꼭 이런 때 찾는다고 했던가. 정말 하늘에게 감사했다.


가난한 공무원시험 준비생에겐 ‘100원’도 정말 아깝다. 직장 생활하며 교보문고를 내 집 드나들 듯 가며 책을 사서 읽었던 그 생활이 그리워 고시원 근처 서점을 또 내 집 드나들 듯 들어갔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곳이 내게 천국이었다. 특히 자기 계발 코너에는 온통 너는 반드시 성공한다, 너는 마음먹은 대로 된다, 스피드 독서법만 익히면 합격도 빨라진다 등의 온갖 감언이설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니 거의 나에게 종교와도 같았다. 다 믿었으니까. 그렇게 책을 보고 동기부여를 받고, 마음을 리셋하고 고시원을 향했다.


경찰합격수기라고 하면 대부분 ‘공부 방법’을 논한다. 그러나 나는 이미 18년이 지났고,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고시원과 학원생활 2개월은 또렷이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다. 그만큼 결핍감이 심했고, 간절했다. 학교 다닐 적 공부를 잘해본 적도 없고, 전문대졸이며 회사생활 하다 온 평범한 여자였다. 학원 안에서 웅성거리는 대화 속엔 “00은 SKY 출신이네. 00은 대기업 다니다 왔대.” 하면서 기를 죽이긴 했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너무 간절해서 내가 누구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공부하는 나만 있지, 내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결핍, 

두려움 속에서 피어나는 간절함과 실행력은 결국 꿈을 이루게 해주는 용광로와 같은 에너지였다. 지금도 그런 감정을 느낄 때마다 흙에 거름을 뿌리듯 좋은 양분으로 받아들인다. 어찌 인생에 쨍쨍한 햇빛만 있으며 시원한 물만 있을까 나란 씨앗에게는 골고루 인생 자양분이 필요하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다시 간절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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