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승호 Feb 19. 2024

대화(大禍)는 대화(對話)로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가정 내 부모-자녀 간 갈등, 또래들 간 온. 오프라인상 언어 시비 문제, 오해로 시작된 험담 이후 집단 따돌림 등 당사자 간 직접 사안을 해결하고자 시작한 대화(對話)가 말 그대로 대화(大禍)로 커지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대화(大禍)는 당사자 간 대화(對話)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2019년 인천경찰청 내 10개 경찰서 중 유일하게 계양경찰서가 '회복적 경찰활동' 시범 운영 관서로 선정되었다. '회복적 경찰활동'의 주 취지는 행위자에 대한 무조건적 형사 처벌을 통한 사안 해결이 아니다. 행위자. 피해자 간 대화를 통해 관계 회복, 피해 회복, 서로 간 지킬 수 있는 내용을 대화 말미 '약속이행문'에 작성한다. 향후 당사자 간 재발 행위 방지, 보복 행위 금지 등을 약속한다. 운 좋게 시범 관서로 선정된 후 5년 간 주로 청소년 사안 관련 100여 건을 넘는 사안에 대해 '회복적 경찰활동'을 실시했다. 사안들을 살펴보면,

- 집단 무리 간 시비

- 여학생 간 험담, 오해, 집단 따돌림 사안 등

- 남학생 간 폭행. 강요. 협박 사안 등

- 오토바이 절도, 차량털이 절도, 무인점포 절도 등 성인-소년 간 사안

- 특수존속상해, 특수존속협박 등 보호자-자녀 간 가정 내 갈등 사안


학교전담경찰관으로서 거주자 간 층간소음, 가정폭력(부부싸움 등) 관련 성인 관련 사안보다는 소년 사건 관련하여 '회복적 경찰활동'을 진행했다. 사실 처음부터 '회복적 경찰활동'에 긍정적인 의견은 아니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 '경찰관이 사안을 축소하거나 당사자 간 합의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피해 측에서 사건 접수를 통해 형사처벌을 하면 되는데 굳이 일정. 장소 조율을 해서 행위자에게 반성의 기회를 줘야 하는지? 무슨 대화 프로세스가 이래? 그냥 상대방이 하는 말을 집중해서 듣고, 그대로 복명복창하는 프로세스뿐이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큰 오산이었다. '회복적 경찰활동'은 각 경찰서별로 연계된 기관이 달라 대화 프로세스도 조금씩 다르다. 기관별 대화 프로세스는 다르지만 결국 추구하는 방향은 '당사자 간 관계 회복'이라는 점에서 같다.

여기서 '관계 회복'이란 반드시 2~3시간에 걸친 대화 모임 후 무조건 서로 화해하고 악수하며 사과를 받거나, 어깨동무를 하며 잘 지내라는 식의 관계 회복이 아니다. 대상자들과 사전 모임, 본 모임을 통해 당시 상황에서 심정은 어땠는지, 상대방이 무엇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는지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눈 뒤, 대화 모임 이후 '상대방이 앞으로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서로가 원하고, 실제로 지킬 수 있는 내용을 '약속이행문'에 작성한다. 당사자 중 한 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약속이행문에 내용을 작성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회복적 경찰활동'을 실시한 당사자 간에는 사안(재범)이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행위자가 또 다른 학교폭력 가해 행위로 다른 피해자와 '회복적 경찰활동'을 실시한 적은 있다. 확실한 것은 당사자 간 재범은 없었다는 점이다. 당사자 간 약속이행문까지 작성했다면 이후에는 SPO가 행위자, 피해자 대상 월 1~2회 사후모니터링을 실시하기 때문이다. SPO가 사후모니터링 중 행위자 측에서


행위자 : 샘, 피해자가 다른 친구들한테 경찰서에서 저랑 대화한 것에 대해 저(행위자)를 발랐다(이겼다)고 소문을 내고 다니는데, 그때 서로 비밀로 하기로 했던 것 아니에요?

SPO : 확인해 볼게.


위 대화 내용처럼 SPO가 사후모니터링 중 문제 사항을 인지하여 중간에서 중재를 한다. 만약 당사자 간 중재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다시 '회복적 경찰활동'을 실시하여 당사자 간 약속했던 '약속이행문' 내용을 수정하거나 추가해야 한다. 아직까지 약속이행문을 수정하거나 추가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회복적 경찰활동'을 피해자가 행위자에 대해 형사 처벌을 원하지 않는 '처벌 불원'(합의)의 수단으로 이해를 해서는 안된다.


행위자 : 피해자와 대화를 통해 오해도 풀고, 사과도 했고, 약속이행문까지 작성했으니 '합의' 된 거예요?

SPO : '회복적 경찰활동'(대화 모임)을 했다고 '합의'가 된 것은 아니야.


'회복적 경찰활동'은 보호자, 미성년자가 동의 후 자율적으로 참여를 하는 것이다. 대화 모임을 시작했다고 해서 무조건 '약속이행문' 단계까지 진행할 강제성도 띄지 않는다. 당사자 간 자발적 의사로 시작한 만큼 사전. 본 모임 중 언제든지 '대화 모임' 철회를 요청할 수 있다. 실제로 피해자가 사전 모임 후 행위자와 대면하는 본 모임은 힘들 것 같다고 하여 본 모임을 진행하지 않은 적도 여러 차례 있다. 반대로 '대화 모임' 이후 피해자가 행위자를 용서하는 의미로 '처벌불원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경찰서에서 진행하는 '회복적 경찰활동'은 자발적 참여로 시작되는 것이지 절대로 필수 사항이 아니다. 그리고 먼저 '회복적 경찰활동'을 통해 대화를 시도해 본 후 피해 사실에 대해 언제든지 사건 접수가 가능하다.


아래는 실제로 경찰서에서 진행했던 '회복적 경찰활동'의 구체적인 '약속이행문' 내용 예시이다. 


- 당사자 간 복도 등 대면하더라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투명인간 취급하기로 한다.)

- 행위자는 피해자가 먼저 인사를 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 행위자는 평소 21:00까지 귀가하기로 한다. 부득이하게 늦더라도 꼭 연락을 한 후 22:00까지는 귀가하기로 한다.

- 오늘 대화 모임 이후 행위자는 물론 행위자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피해자의 험담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 향후 당사자 간 문제 발생 시, 당사자 간 해결하지 않고, SPO를 통해 사안을 해결한다.

- 행위자는 온. 오프라인상 피해자에게 절대로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 안부 인사, 눈인사 금지

작가의 이전글 낮말은 샘이 듣고, 밤말은 쟤가 듣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