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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PD Dec 27. 2021

인디게임 인식전환 #4

인디게임 참신함 비판

인디게임은 인디게임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도 존재했다. 마치 최근에 유행하는 메타버스라는 용어처럼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인디게임을 만드는 사람부터 플레이하는 사람들까지 '인디'라는 단어가 가진 모호함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렇게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불명확성을 통해 오해와 논쟁을 이어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는 이런 불명확성으로 인한 모호함의 경계에서 철학적 비판을 통하여 느낌표를 던지고자 한다. 우선 기존 인디게임을 정의하던 형이하학적이고 절대적 기준을 버리고 형이상학적이고 상대적인 이념으로 정리하여 인식을 전환하고자 한다.


그럼 우리가 이제까지 인디게임을 규정하기 위해 선봉에 세웠던 단어들을 비판해 볼 시간이다. 그리고 '인디'가 가진 진짜 독립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고민해볼 시간이다.




#4 인디게임 참신함 비판


인디게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게이머에게 '인디게임의 장점'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참신함'이라는 장점을 많이 꼽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에 비판해볼 주제는 바로 '참신함'이다.


예전부터 각종 인디게임 시상식이나 게임쇼 그리고 컨퍼런스가 열리면 항상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참신함이었다. 인디게임은 언제부터 참신함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아마도 모바일 게임 오픈마켓들이 활성화되면서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게임 제작과 퍼블리싱의 패러다임이 PC, 콘솔이 아닌 모바일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마우스, 키보드, 패드 형태의 컨트롤러의 입력방식을 벗어난 스마트폰의 터치 스크린은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한 게임 UX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게임에 관심이 없거나, 점유시간이 낮았던 사용자들을 게이머로 빠르게 유입시키기 시작했다. 또한 급속도로 발전한 정보통신 기술은 이런 유입 속도를 가속화했다. 그 당시 스마트폰으로 서비스되었던 게임들 대부분이 참신해 보였다. "보였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그 참신함이 객관성이 아닌 '주관적인 개인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나는 게임을 플레이어와 개발자의 관점에서 참신함을 가장 만족했던 시기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이전 모바일 게임의 가능성을 확인했던 피처폰 게임이 서비스되던 시기였다. 물론 그 참신함을 주입하기 위한 개발진의 노력도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동통신사 검수절차였다. 그 당시 게임을 서비스하려면 이통사와 CP(게임 콘텐츠 제공자) 등록을 위한 별도 계약단계가 있었다. 그리고 게임의 서비스를 위한 사전 검수가 기획단계부터 당연하게 진행되었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표현의 자유가 억업받는 말도 안 되는 폭력적인 시기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이동통신사의 게임 검수 담당자들은 품질관리를 통한 시장 관리의 사명감 같은 게 있었다. 그중에서도 참신함은 검수 담당자들이 비중을 두고 특별히 확인하는 영역이었다. 그 참신함으로 추천에 걸리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던 시기였다. 물론 그 참신함의 기준도 검수자의 주관적인 견해였겠지만 말이다. 당시 모바일 게이머들은 검수자들의 품질관리를 믿고 게임 플레이를 위한 비용을 선지불(P2P <pay-to-play>)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신규 서비스되는 게임의 수도 적었고 그나마도 서비스 간격이 조절되는 시기였다. 그렇게 플레이어들은 선지불한 게임의 콘텐츠를 최대한 맛있게 플레이하고 싶어 했고 장기간 음미했다. 이러한 능동적인 게임 소비는 지속적인 후속작을 만들어내는데 팬덤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게임의 스팩트럼은 좁았고 게이머들의 경험은 제한적이었으며 참신함의 기준도 정해져 있었다. 그렇게 참신함은 게임 제작과 플레이의 기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픈마켓으로 넘어가고 핵심 BM이 기반 F2P(Free to Play)의 IAP중심으로 변경되면서 게이머들의 경험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굉장히 많은 게임을 무료로 경함 할 수 있게 되었고 매년 서비스되는 게임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게임의 소비도 자신이 경험한 재미의 유사성의 확장을 통한 플랫폼 사업자의 알고리즘에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직접 플레이하지 않은 게임도 스트리밍이나 리뷰 등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는데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게이머들은 '주관적인 참신함'의 기준을 버리게 되고, '객관화된 다른 게이머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동기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집단 동기화는 '큰 물고기는 빠져나가는 촘촘한 그물'이 되어 장르에 편승한 큰 물고기는 빠져나가고 참신함을 추구했던 치어들을 낚아 올리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더 이상 참신함에 비용을 지불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아니러니 하게 게이머들이 원하는 '참신함의 순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많은 게이머들과 인디게임 제작자들이 이런 '참신함의 순도'를 높이는 숙명을 인디게임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타자의 강요이며, 고통스러운 '연대의식'의 하나로 서로를 옭아매는 멍에와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연대의식은 사실 즐거움보다 고통이며, 결국 누구도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진부함이고 종교적인 원죄에 가깝다.


우리는 이런 '참신함의 순도'라는 집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타자의 강요에 의해 인디가 가진 독립의 순도를 낮출 필요가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참신함은 전혀 새로운 무언가가 아니라 "익숙함속에서 만나는 낯섦'에 가깝다. 결국 내가 가진 정체성을 가지고 변주하지 않고 전혀 다른 페르소나를 연주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이 참신함이라 느끼지 않고 이상함으로 느끼게 될게 뻔하다. 결국 참신함이란 '독창성의 낯섦'이 만든 우연한 발견이고 가면(페르소나)을 벗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확률적인 발견이지 순도를 높이는 집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참신(新)의 한자를 풀어보면 ‘벨 참’(斬) 자와 ‘새로울 신’(新)이 합쳐진 단어다. 새로운 것을 벤다라는 건 뭘까? 참 철학적인 단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새롭다고 착각하는 껍데기 가면을 베어 버리고 진짜 나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참신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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