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O’는 과연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지난 1월 대한민국에 ‘DAO’라는 키워드를 대중에게 알린 사건이 있었다. 바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경매에 내놓은 국보 2점을 낙찰받기 위해 조직된 ‘국보 DAO’ 때문이다. 결과는 27일 경매 직전까지 ‘국보 DAO’의 모금액은 24억 원으로 목표액이었던 최소 40억을 달성하지 못해 경매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아쉽게 환불되는 수순으로 진행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 미술계 관계자가 싱가포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미교표 블록체인 전문가를 만나 ‘헤리티지 DAO’를 결성하고 32억 원 정도를 모금하여, 경매 유찰 4일 뒤인 1월 31일 금동삼존불감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헤리티지 DAO’는 51%의 지분을 간송 재단에 기증하며 대한민국에 ‘DAO’라는 키워드를 각인시켰고, 국내 퍼블릭 모금의 첫 ‘DAO’라는 상징성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DAO’란 무엇인가?
‘DAO’는 탈중앙화 자율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의 약자로 ‘탈중앙화’ 이념을 구현한 블록체인 합의 알고리즘을 통해 운영되는 일종의 ‘의결기구’라고 보면 된다. 의사결정 주체만 남기고 ‘의장’을 포함한 모든 부가적 조직 구성을 소거해버린, 오직 결정을 위한 조직인 것이다.
‘DAO’는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2016년 3월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이념과 상통하는 조직으로 ‘DAO’를 출범했다. ‘디지털 분산형 자율조직 프로젝트’의 명칭으로 처음 사용된 ‘DAO’는 3달 만에 해커들의 공격을 받아 유래 없는 하드 포크(hardfork)<블록체인의 기본 소프트웨어 소스코드를 통쩨로 복사하여 독립적인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체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를 감행하게 만들어 이더리움 클래식 탄생의 배경이 되었다.
계층구조적인 관리 없이 완전한 기능이 가능한 조직을 과연 만들 수 있고,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게 운영할 수 있을까?
‘DAO’의 핵심
최근 정치권에서 많이 이야기되는 용어가 있다. 바로바로 ‘협치’(協治, governance)라는 단어다. 협치는 정치학 용어로 기존 중앙집권적인 통치(統治, government)와 대비되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협치 즉 ‘거버넌스’는 탈중앙화 이념과 만나면서 ‘DAO’라는 협의체를 구성하게 되었다.
정치권에서는 마치 정당 간의 협력과 타협 정치와 비슷하게 사용되지만 협치는 그런 게 아니다. 협치는 시민이 주체이며 시민을 중심으로 정부기관, 기업, 전문가, 의회 등의 조직들과 함께 우리에게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즉 협치는 타협이 아니라 공동체가 합리적으로 일하는 방식이며 문화다.
그리고 이런 공동체 문화는 포용성에 기반한 다원주의로 진보적인 협의체를 구성하게 된다. 공동체에 속한 개인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각자의 행복과 자아실현을 위한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의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를 통해 시민 개인은 시민성(citizenship)<“공동체에 소속된 공공의 민주주의 공간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에 대한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주어진 변화 가능한 지위와 역할”을 뜻한다.>을 확인하고 자치력을 경험하게 된다.
‘DAO’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중앙에서 관리하는 주체’가 없는 ‘탈중앙화’된 자율적으로 투표하고 의사 결정을 하며 조직을 운영하게 된다. 작은 조직부터 시작해서 기업 그리고 국가 차원의 의사 결정까지 운용할 수 있는 것이다.
‘DAO’의 이상과 현실
많은 사람들이 계층 구조가 없는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거버넌스, 공동체 일원들의 자발적인 헌신, 공헌에 의한 공동체의 성장, 이상적인 이익 배분구조, 투명한 운영 등을 이야기하며 희망을 꿈꾼다.
이런 ‘DAO’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오늘날 조직의 운영되는 방식에서 잘못된 모든 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모든 소스코드는 기계가 실행하지만 결국 사람에 의해 작성된다.
‘DAO’가 가진 의결의 형태는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와 다를 게 없다. 결국 그 당시 직접민주주의가 가진 제도적 한계가 ‘DAO’의 한계인 것이다.
이런 제도적 한계가 바로 ‘다수결’이다. ‘다수결의 원칙’은 마치 민주주의의 첨탑처럼 신봉되지만, 다수결은 그냥 쉽고 빠르기 때문에 선택된 방법이다. ‘기한이 정해진 선택’ 그리고 ‘책임의 공동 분배’라는 부분에서 유리하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선택된 방법이다.
즉 ‘DAO’의 모든 의결이 합리적일 수 있지만 모두 옳은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다수의 횡포로 정치적 패권주의가 형성된다면 다수에 의해 소수가 배제되어 소외될 수 있고, 진부한 의사결정으로 인한 보틀넥(bottleneck)이 공동체를 숨 막히게 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이런 ‘민주적 조직’의 진부한 한계를 극복하고 ‘DAO’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지속하게 할 수 있을까?
‘DAO’의 자발적 작동 원리
‘DAO’는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계약 당사자가 사전에 협의한 내용을 미리 프로그래밍하여 전자 계약서 문서 안에 넣어두고, 이 계약 조건이 모두 충족되면 자동으로 계약 내용이 실행되도록 하는 시스템>를 구성하는 알고리즘에 의해서만 돌아간다. 이 모든 결정은 투명하고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만 이뤄지며, 이를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참여하는 다수의 당사자들이 승인하는 과정을 통해 운영한다. 서로의 익명성에 기반한 집단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무신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의결을 관리할 어떠한 인위적인 간섭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다양한 활동에 공헌하게 되면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자발적인 참여를 위해 보상을 주는 것인데, 과연 이런 자율적인 조직이 개인의 희생만으로 완만하게 운용될 수 있을까?
기존 중앙화 된 조직이나 공동체는 소수, 궁극적으로는 최고 권력자에 의해 권익이 독점적으로 운용되었다. 우리는 이런 권력을 독점한 기득권을 ‘카르텔’이라고 부른다. 이런 카르텔은 정부기관, 기업, 전문가, 의회 등을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한 공익보다는 권력자의 사익을 위한 플랫폼이나 나팔수로 활용한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이렇게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권익투쟁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 ‘DAO’의 작동 원리다.
‘DAO’의 자기 조직화
‘DAO’의 의결 진행은 빠르게 치고 나가는 기동전이 아닌, 긴 전투를 준비하는 진지전에 가깝다고 본다. 수많은 작은 전투를 통해 천천히 전선이 움직이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만약 누군가 폭격기를 사용한다거나 미사일을 사용해 전장이 무너진다면 해당 공동체는 공멸한다.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DAO’의 모든 의결이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킬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작은 의결들이 모여서 결국 합리적인 목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한 기능을 하는 작고 큰 ‘DAO’가 만들어질 것이고 서로를 견제하고 도와주며 융합하고 다시 분열하면서, 공동체를 위한 공헌의 합리성과 결과를 통해 계속해서 진보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산일 구조'를 통한 '자기 조직화'일 것이다.
‘DAO’는 그렇게 새로운 질서로 융합하고 진보할 것이다.
메타버스를 위한 ‘DAO’의 미래
‘DAO’는 경제조직보다는 정치조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현재 ‘DAO’는 수많은 정반합의 단계를 거치며 더 나은 조직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DAO’가 정치조직으로 민주적 힘을 얻으려면 현실에서 만들어진 자본적인 계급구조를 철저하게 배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즉 외부 자본이 아닌 공동체 내부의 공헌도에 의해서만 ‘DAO’ 의결권의 정당성이 만들어져야 된다는 말이다. 만약 외부 자본으로 구성되는 ‘DAO’라면 지금의 수직적인 자본주의 계급구조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개헌보다 어려운 진행과정이라면 해당 ‘DAO’가 소속된 공동체는 도태될 것이다.
우리의 현실 세계는 이미 포용성 상실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남녀 간, 세대 간, 계층 간 어떻게든 이익을 위해 자신을 우위 집단에 놓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집단을 혐오해야 되는 야만의 시대.
‘DAO’를 통해 우리는 메타버스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 진정한 다원주의를 품고 민주주의가 꽃피는 포용성의 시대가 오기를 간절하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