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시절, 약 10개월 독일의 도시 마인츠에서 거주한 적이 있다.
당시, 독일에 처음 방문한 우리 가족은 독일에 먼저 정착한 다른 가족 분들의 신세를 많이 졌었다. 그리고, 10개월 동안 그 가족 분들과 귀중한 인연을 맺으며, 평생 잊지 못할 하루하루의 시간을 보냈다. 회고해보면, 당시 10개월의 시간이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2022년 9월, 나는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와이프와 마인츠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30년 전 마인츠에 왔을 때, 아버님이 지금의 내 나이셨다. 과거 우리 가족이 신세 졌던 많은 어른 분들 역시, 당시에는 지금의 내 나이셨던 것이다. 그리고, 30년 만에 만난 그 분들은 이젠 누군가의 할아버지/할머니가 되어 계셨고, 나보다 살짝 어렸던 그 분들의 자녀들은 이미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있었다.
30년 만에 방문한 마인츠에서 당시 가장 많은 신세를 졌던 두 가족과 정말 운 좋게 연락이 닿아, 그 분들의 마인츠 집으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몇 잔의 티와 케익을 곁들이며, 30년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를 쭉 들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먼저, 앞으로의 나의 시간은 지금보다 더 빨리 지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두 어른들로부터 '일, 그리고 자녀들의 성장에 집중하다 보니 30년이 너무 금방 지나갔다'는 말을 들으며, 나 역시 시간의 더 빠른 유속을 거스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정신차려 보면, 70살이 되어, 누군가에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
단, 좋은 사람에게 시간은 마치 포도주의 오크통같이, 향과 깊이를 더해주고, 더 배려깊고 더 여유있게 만들어 주는 의미있는 흐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30년 만에 만난 분들은, 30년 전과 변함이 없었다. 하나 변했다면, 10살의 나 대비 40살의 내가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 그래서 그 때는 끼지 못했던(?) 대화에 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그 분들께서 느끼신 30년 간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30년 만에 만난 분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지와 사랑)이 떠올랐다. 감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만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대화를 보며 '나도 저런 우정을 쌓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30년 만에 만난 분들과 대화하며 그 느낌을 조금 받을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 그리고 관계는 오랜 시간 동안 끊겨 있었어도, 각자 정신없이 열심히 산 이후, 우연히 다시 이어지고 소통이 시작되는 순간, 매우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 지금 내가 맺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도, 시간이 지나면 그 하나 하나가 인생의 축복으로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봤다.
과거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큰 진심으로 대하고,
현재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최선을 다하며,
앞으로 다가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더 큰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