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 인턴하다 도망친 경험으로부터의 생각들
대학교 3학년 시절, S&D 라는 경영전략학회를 열심히 하면서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을 꼭 해보고 싶다'는 욕망에 가까운 열정이 있었다. 학회에서 배운 이슈트리, 논리적 사고, 가설적 사고, 민토피라미드커뮤니케이션 등을 실전에서 응용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전략 컨설팅 사'에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학회에서 이론을 배우는 것을 넘어서, 실전에서 부딪히며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었다.
하지만, 당시는 전략 컨설팅 펌 RA 가 희소하던 시절이어서, 인턴을 구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경영대 구인구직 사이트에 매일 접속해보고, 동아리 선배들에게 부탁하면서, 겨우겨우 resume 를 넣어도 인터뷰에서 떨어지기가 십상이었다. 모니터그룹 면접도 Ding 이었고, 가장 해보고 싶었던 베인 RA 도 Ding 을 맞으며, '도대체 어떻게 해야 컨설팅 회사 RA 를 할 수 있는 것일까' 고민을 엄청 했었다. (재밌는 것은 당시 면접을 떨어뜨렸던 면접관분들과 BCG 에서 만났다는 사실... ㅋㅋ)
그러던 도중, 이름모를 컨설팅 회사 (하지만 이름은 꽤 멋있어 보이는 회사)에서 RA 공고가 떠서, 간절한 마음에 지원하게 되었다. 마침 위치도 여의도에 있는 회사였다. 인터뷰를 보러 여의도에 도착하는 순간 수 많은 증권가 건물이 눈에 띄며 설레임 뿜뿜이었기 때문에, '여의도에 있는 컨설팅 회사라면, 전략 컨설팅과 유사한 일을 하지 않을까!! ' 생각하며 면접을 봤다. 마침 합격을 하게 되어서, 설레이는 마음을 가지고 출근을 하게 되었다.
But!! 입사해서 안 사실이었지만, 당시 그 컨설팅 회사는 Sales Coaching 컨설팅 회사였다. 중소기업 영업직 인력 분들에 대한 집합 교육을 시켜주는 곳이었다. 당시 그 회사에서 사용하는 슬라이드는, 내가 그리고 싶은 슬라이드는 아니었다. 해당 회사에서는 가설적 사고와, 검증을 위한 화려한 분석을 할 수 없었다. 다만, 다른 회사의 영업 best practice 자료를 모으고, 교육 컨설턴트 분들이 현장 교육 하실 때 따라가서 모니터링 할 뿐이었다. 당시 너무 좌절스러웠던 순간이었고, '이 시기에 꼭 전략 컨설팅 RA 해야 하는데... 이 시기를 놓치면 안되는데..' 불안함이 엄습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 당시 나는 일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성과도 내지도 못하고, 계속 전략 컨설팅 RA 가 뜨는지 search 만 하곤 했다. 솔직히 내 인생에서, 가장 일에 집중하지도 못했고, 거의 배째라 모드였던 것 같다.
그런데,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하던 형이 급 해당 회사에 인턴을 지원한다고 하시길래, 정말 의아한 마음으로 '여길 왜 지원하시냐'고 물어봤었는데, '컨설팅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고 말씀하셔서, '여긴 전략 컨설팅과는 다르다' 고 설명 드렸지만, 그래도 조인하고 싶다며 인터뷰 보셨고, 결국 조인하셨다. 그 형도 근무하신 지 2~3일 만에 '여긴 전략 컨설팅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는구나' 깨달으셨지만, 그 형의 근무 태도는 나와는 정말 달랐다. 그 형은 본인이 생각하던 일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이 회사에서 value 를 만들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본인이 아예 Sales Coaching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서 회사에 제공까지 하는 등의 훌륭한 태토 +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 형의 좋은 태토 + 성과가, 함께 일하고 있던 나를 동기부여 시키지는 못했다. 여전히 탈출모드였던 나는, 급 뜬 베인 RA 포지션을 발견했고 (당시 그 회사 RA 분이 못버티고 그만둬서, RA 포지션 하나가 급 떴었다), 인생 최대 절박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했고, 마침 진짜 열심히 일할 RA 가 필요했던 그 팀에서 나를 RA 로 선발해줬다. 결국, Sales Coaching 컨설팅 회사에서 나를 뽑아준 매니저분께 기간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탈출하다시피 회사를 나와서, 베인 RA 로 합류했고, 그 이후 나의 태도는 정말 달라졌다. 너무 해보고 싶었던 일을 겨우겨우 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자발적 야근, 자발적 추가 업무, 자발적 더 다양한/깊은 리서치 등을 하면서 정말 신나게 일했고, 주변 컨설턴트 분들이 '승훈씨는 항상 웃으며 일하네요~' 라 말씀해 주시며,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웃으며 일할 수 있지 신기해 하셨다.
결론적으로, 베인 RA 은 성공적이었고, 내 인생에 매우 큰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이사님과의 미팅에 들어갈 때 마다, '아 저런 것이 논리적 사고이구나, 저게 바로 민토식 소통이구나, 저게 바로 킬러 슬라이드구나, 이런게 바로 핵심 분석이고 이 분석이 이런 시사점을 만들어 내는구나' 느낄 수 있었고, 너무 많은 것을 압축된 기간 동안 배울 수 있었다. 함께 일하던 분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나갔고, 나중에 덕분에 Bain offer 를 받을 수도 있었다. (이후 BCG 에서 인연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다만, RA 마치고 바로 군대에 가서 문득 든 생각은,
'Sales Coaching 컨설팅 사에 일하던 그 형은 정말 대단하다. 누구나, 본인이 일하고 싶은 곳에서는 엄청난 열정을 발휘하며 일하는데, 내가 원치 않은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평균 이상의 열정과 실력을 뽑아 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professionalism 일 수 있겠다. 나는 굉장히 미성숙하고 이기적이고 하수급 태도였다면, 그 형은 성숙하고 책임감있는 인재였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스스로 부끄러워지고, 그 형의 태도를 상기하며 '내가 원치 않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 때 그 형처럼 대처하자' 떠올린다.
요즘, 가끔 Ringle 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분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저 분들께 링글은 베인 RA 만큼의 impact 는 절대 아닐텐데, 오히려 Sales Coaching 회사와 같을 수도 있는데, 저 분들께 어떻게 Ringle 에서의 인턴이 의미있는 커리어로 남을 수 있을까?'
'그런데 참 대단하다. 당시 나라면, 링글 인턴에 100% 집중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내 일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열정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업무하는 모습을 보면, 과거의 나보다 더 나은 인재들을 인턴으로 모시고 있는 것 같아 참 행운이다'
Ringle 이라는 회사의 인턴 포지션이, 인턴 분들의 resume 를 더 빛나게 할 수 있는 포지션이 될 수 있도록, 여러모로 노력해야 겠다는 자극을 받는다 (예: 해외 출장도 보내드리고, 큰 프로젝트를 직접 리드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본질적으로 나중에 정규직 인터뷰 보는 회사에서 '저 링글 알아요! 거기서 인턴을 했다니, 기대합니다!' 라는 말 하실 수 있도록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가 되어야 겠다)
더불어, 취업을 앞두고, 미래의 커리어를 걸고 3개월 이상 본인의 가장 중요한 시간을 투자하시는 이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진짜 중요한 시간인데, 그 시간을 링글에 제공해 주신 분들이기에.
과거에 일하다 도망쳤던 나 대비, 더 성숙한 태도로 회사 일을 임해주시는 (임해주셨던) 분들을 보며, 많이 배우고 또 자극 받는다. 다 더더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