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by 이승훈 Hoon Lee

체면


실리콘밸리 현지에 있으면서 '마음이 편하다' '집중하기 좋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유독 많이 배운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 곳의 꽤 많은 사람들이 체면이라는 단어를 내려놓고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체면. 모든 창업가는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스타트업은 각자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도전 중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오늘도 견뎌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서, 회사의 크고 작음, 회사의 투자 Stage 등은 솔직히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솔직히.. 큰 회사나 작은 회사나, 겪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유사할 때가 더 많고, 서로 배우고 자극받을 수 있는 부분도 각자에게 많다.


다만, 굳이 체면을 차리려 노력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의 공통점은 형식을 중시하는 것이다. 의전을 의식한다거나, 누가 만나러 오는지를 신경쓴다거나 (내가 왜 가야해? 그들이 와야지!), 미팅 시 순서가 있다거나... 그리고, 여기서 그런 분들을 보면 2가지 감정이 든다. 1) 왜 그런지는 이해한다. 문화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2) 그런데.. 굳이? 특히 여기서에서까지?


형식을 차리는 분들의 마음 속 기저에는 '내가 만족할만한 수준까지 인정받지 못함'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나름 대단한데? 그런데, 아직 그 정도 주목을 받지는 못하네? 지금 이 자리에서 만큼은 체면을 살리고 싶다'의 마음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관심 받고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도 요즘 문제 투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체면'의 관점에서 여기에 있으면 편한 이유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관심 또는 인정을 받고 있어서는 아니다. 여기에서 체면을 덜 신경쓰는 이유는, 1)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2) 우리만 고생하는 것 아니기 때문에 & 다른 사람들의 고생도 잘 보이고 들리기 때문에, 3) 체면 대 체면이 아닌, 회사 대 회사도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4) 모두가 도전자 입장에서는 문화가 최소한으로 서 있기 때문에, 5) '언젠간 잘 될꺼야' 라는 근거 없는 믿음과, 그 믿음의 근거가 되어 주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데 그 믿음의 근간이 되는 사람들이 체면을 덜 따지기 때문에) 라고 생각한다.


단, 체면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 예의를 내려놓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여기는 예의를 지나치게 신경쓰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아이러니한 것은, 체면을 신경쓰다보면 의외로 기본적인 예의를 놓치는 경우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어떤 미팅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예의는, 내가 나를 충분히 잘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전 자리에 가보면... 자기 소개를 생략하는 분들이 꽤 있다. '당연히 나를 알아봐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예의 없음의 시작이 될 때가 많다)


아무쪼록, 체면이라는 것.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힘들면 힘들다 이야기 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소통이 win-win 으로 이어지는 관계/협업의 중요한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체면은 살짝 더 내려놓고, 실리를 보다 효율적이면서도 인간적으로 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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