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좋은 교육 그냥 갖다 써도 괜찮을까?
핀란드, 노르웨이, 싱가포르. 먼 거리만큼이나 생경했던 이 나라들은 뛰어난 교육모델로 한국의 부모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 교육의 우수성을 종종 예로 드는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바. 그에게는 아니면 그의 참모들에게는 한국의 학업 성취도가 매우 놀랍고 부럽기까지 한 듯 하다. 그의 연설에서 한국은 성공적인 교육 모델로 꽤 여러번 언급이 됐었다. 현직에 있는 친구 교사들은 물론 이에 동의하는 한국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대학과 구직경쟁이라는 현실에 치여 어쩔 수 없을 뿐 모두들 알고 있는거다. 계량화된 점수는 교육이라는 큰 이상의 지극히 작은 일부분이라는 것을. 한국의 학교현장과 미국의 학교현장 모두를 경험한 나로서는 미국 대통령의 한국 교육에 대한 평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국민들도, 그렇게 얘기할 수 밖에 없는 미국대통령도 이해가 간다.
건너편 집의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인다는 속담이 있듯 한 발짝 멀리서 바라보는 것들은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설렘과 정보의 부족이 주는 착각으로 인해 왠지 더 좋아 보이곤 한다. 자신들이 서있는 곳에서 접하는 크고 복잡한 문제들 보며 이를 개혁하는 고통보다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곳을 가르키며 희망을 말하는 것이 당장은 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건너편 잔디에 직접 가서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서는 그 잔디가 인조잔디라서 푸르른 것인지 농약이 범벅되어 있는 보기만 그럴싸한 것 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 푸른 잔디종자를 갖다 내 땅에 심는다고 같은 색의 잔디가 자라는 것도 보장할 수 없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른 역사와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나라 들을 두고 교육제도와 그 운영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매우 무의미하고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비교나 이를 통한 무조건인 정책 도입 보다는 그러한 정책이 실행 되게 된 구체적인 배경과 이유에 대한 깊은 고찰이 선행 되어야 한다. 잔디 종자를 옮겨 심기전 그 잔디의 품종은 물론 그애 잘 맞는 흙과 날씨, 관리의 방법까지 하나하나 살펴야 하는 것이다. 우리아이들의 미래를 잔디보다는 더 꼼꼼히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어쩌면 길 건너편의 푸르른 잔디는 내 아이가 뛰어 놀기엔 그다지 푸르지 못할 수도 있으니.
필자는 이 공간을 통해 체험으로 익힌 한국학교와 미국 학교의 현장 구석구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