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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hwan Connor Jeon Jan 21. 2016

한국과 미국의 기간제 교사 비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국의 기간제 교사에 대한 소식을  접하며...

    매일 출근길에 팟캐스트를 들으며 충격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긴 하지만 이번 한국의 기간제 교사가 학생들에게 당한 폭력에 대한 기사나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 기간제 교사들이 학교에서 당하는 갑질에 대한 소식을 들으며 다시 한 번 귀를 의심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의 마음이 없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고 자랄지 심히 걱정이다. 어쩌면 한국과 미국이라는 완전히 다른 두 사회를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가도 사회적 변화라는 것이 때로는 이렇게 아픈 생채기를 내며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 썩은 상처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학생이 교사를 때린다?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소위 "반 통제"가 잘 안 되는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은근히 무시를 당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특별히 남자 고등학교를 다녔던 필자는 그 학생들을 다루려면 여간한 "내공"이 아니고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교사를 때리고 침을 뱉고 대놓고 조롱하는 것은 들어본 적도 상상을 해본 적도 없다. 굳이 학생이 교사에게 한 행동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행동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별히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학생들은 어쩌다 이런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무엇이 이들의 인간존중에 대한 양심을 이토록 마비시켜놓은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사회가  그러하다"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 학생들은 그들이 보고 배운 대로, 느낀 대로, 사회가 시키는 대로 행동을 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어쩌면 한국은 이렇게도 인간에 대한 존중이 실종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열어가는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은 몸서리를 칠 만큼 무섭다. 미국에서 신체적, 언어적 폭력은 금지는 교사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경우와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존중은 서로 간에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이다. 제도는 이를  뒷받침해주어야 하고 사회는 이에 대한 교육과 연습에 함께 동참할 필요가 있다. 


기간제 교사에 대한 갑질

    소위 갑질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학교에만 적용이 되는 문제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으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정말 그러한가?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나는 갑질을 해도 괜찮은가? 그 위치에 있지 않은 나는 내 위치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의 갑질은 받아도 마땅한가? 이러한 것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자체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어느 위치에 위치하건 상관없이 사회와 조직에는 법과 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모두 이를 존중하고 따르는데 동의한다면 감히 갑질을 할 용기도, 갑질을  감내해야 하는 필요도 없어지게 된다. 한국에서 기간제 교사들이 어려운 담임 업무나 생활지도를 담당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며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된다. 어쩌면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그러한 업무들이야 말로 책임 있고 경륜 있는 교사들이 담당하는 것이 상식일 텐데 이를 업무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기간제 교사들에게 미루는 것은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고 교사로서의  직업윤리에도 맞지가 않다. 부끄러운 일이다. 기간제 교사들이 각종 잡무를  담당하고 있다든지 어떤 교장은 기간제 교사들을 대상으로 상납을 요구했다는 부분에서는 분노가 폭발할 지경이다. 정말 이 정도란 말인가?


미국의 기간제 교사

    다른 글에서도 언급을 한 적이 있지만 미국에서 기간제 교사는 그들이 하는 업무의 한계가 명확하다. 보통의 경우 미국의 기간제 교사들은 수업 시작시간에 출근을 하고 수업이 끝나면 한 30분 이내에 퇴근이 가능하다. 기간제 교사들은 수업을 준비할 책임이 없고, 담임교사나 담당 과목 교사가 미리 준비해 둔 수업 안을 진행할 책임만이 있다. 학교는 정해진 업무 이상의 일을 요구하지도 않고 업무 시간 이후에 기간제 교사들이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도 없다. 정해진 업무시간 이외에 근무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이에 대한 동의를 구하거나 보상을 하는 것은 이미  "합의되어진" 것으로 업무 외 시간의 일들을 요구할 경우 교장은 시간외 수당을 주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미국에서도 기간제 교사가 정교사가 되는데 있어서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관계를 이용해서 노동을 착취하거나 금전적인 요구를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러한 갑질에 대한 "대가"가 얼마나 엄중한지는 모두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감대가 이루어진 토대는 법과 제도, 이를 바탕으로한 경험과 교육의 결과이며 이제는 이에 대해 논쟁도, 설명도 필요치 않은 내재된 인간존중이다.  이러한 결과는 선한 몇몇 사람들의 모범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선한 의도를 뒷받침 할 제도와 이를 위한 실천의지, 이를 지키고자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참여와 감시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기간제 교사들이 정해진 업무 이외의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다른 정교사들이 먼저 업무 외 수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학교 측이 이들에 대한 보상을 그냥 넘어가지 않도록 서로 도와주었던 기억이 있다. 학교 대다수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이러한 움직임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내는 가장 큰 힘이다.


수많은 을들을 향해

    갑질의 피해자가 되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수많은 을들은 어디선가 누군가의 갑이 되어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지. 기간제 교사의 문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갑질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은 어쩌면 이 문제가 학교에서 시작된 일도, 학교에서 끝날 일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가 가정과 사회를 비추는 작은 거울임을 인정한다면 정작 바뀌어야 할 것은 교사를 때린 학생도, 폭행을 당한 교사도 아닌 이 들이 속한 사회, 또 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임을 깨닫게 된다. 작은 시작이 필요하다. 내가 받아온 갑질을 갑질로 풀지 않는 나의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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