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되는 숙제와 그렇지 않은 숙제
이번 겨울방학에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숙제를 주지 않았다. 숙제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바쁘기도 했지만 내가 내주는 숙제를 하는 것에 만족하고 안심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자녀의 필요를 가장 잘 아는 부모가 알아서 그것을 알아서 채워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교사가 최소한의 필요 학습량을 정해주기 보다는 부모가 자녀들의 흥미와 학업 수준에 따라 배움의 최대치를 목표로 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침은 자녀들의 방학을 알차게 보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능력과 열정을 함께 가지고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는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나 그렇지 않은 또는 그렇지 못한 부모의 자녀들이 겪을 어느 정도의 불이익은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소양을 가진 부모라면 틀에 박힌 숙제보다는 최소한 조금은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그렇게 결정했다.
어릴 적 한국에서 겨울방학을 시작하며 가정 통신문에 방학 기간이 41일 정도였던 기억이 있다. 방학을 시작할 무렵엔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를 비롯 각종 동네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길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으레 그러했듯 방학을 며칠 남겨두고서는 미뤄 두었던 각종 방학숙제에 탐구생활에 일기 등을 해내느라 꽤나 맘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그때로서는 방학숙제라는 것이 학기 중 배운 것을 잊지 않고 복습할 수 있는, 마냥 노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학업적 보조수단 이었다. 그럼에도 그 숙제들이 배움에, 경험에 도움이 되었는지를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미국의 어느 주에서 학교 숙제를 두고 아시안 학부모와 백인 학부모들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학군이 좋기로 소문난 학교의 학교장은 학업적인 부담을 덜어주고자 금요일은 숙제를 없애기로 방침을 정했으나 아시안 학부모의 격렬한 반대 때문에 쉽사리 시행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학업적 성공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인종별로 차이가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자녀들의 학업적 성공은 인종을 불문하고 다 중요한 가치이긴 하지만 "이것이 아니면 안 되는" 부류와 "이것도 잘되면 좋은" 부류는 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숙제로 인해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도록 매일 일정량 이상의 숙제를 금지한 이곳 미국 학교의 사정이 한국의 학교 모습과 사뭇 다르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과중한 학업 부담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의 입장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학업 향상을 위한 부모들의 태도는 매우 다름을 보게 된다. 미국 학교에서 공부를 적게 시켜서 항의를 받는 사례보다는 공부를 많이 시켜서 항의를 받는 사례가 더 많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실제로 몇 차례 과중한 숙제나 학생들이 느끼는 과중한 학업적 부담으로 읺해서 햑교장에게 민원을 넣는 학부모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긴 하나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숙제를 교사들의 자율에 맡겨두고 있다. 어떤 교사는 평소에 일반적인 숙제를 전혀 주지 않기도 하고 매일, 또는 매주 주는 교사도 있다. 숙제의 효용성에 대한 논쟁도 꽤 있는 편이어서 어떤 학교들은 학교 방침으로 숙제를 금지하는 곳도 있다. 사실 매우 큰 영토에 각기 다른 역사와 인종, 현실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는 지역의 교육정책이 다르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당연히 지역의 실정에 맞게, 학생 구성에 따라 달라져야 함이 마땅하다. 이러한 다름을 묶어내는 한 가지 공통된 생각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가"이다. 학생들의 배움에 영감을 주지 못하는 숙제는 이미 죽은 것으로 그 가치를 찾아볼 수 없다. 교사들을 숙제를 제출하기에 앞서 부모가 아닌 학생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습득한 지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인지, 학생의 지적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흥미 있는 것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3주간의 겨울 방학을 마치고 쑥 자라서 나타날 1학년 아이들. 비록 검사할 방학숙제는 내주지 않았지만 3주간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조잘대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개학날 하루는 후딱 지나가 버릴 것을 안다. 그 조잘거림 속에서 아이들의 배움의 정도, 가정상황, 감정상태, 개인적 필요들을 발견해 내고 그에 맞는 학기를 준비할 것이다. 그것이 개학 첫날 내가 나에게 주는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