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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hwan Connor Jeon May 16. 2016

맹모삼천지교 in 미국

더 좋은 학교에 내 아이를 맡기고 싶다 - 학교 선택권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은 미국도 한국과 다를 바 없다. 새 학기를 시작하기 몇 달 전부터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은 입학과 전학을 미리 준비하고 보다 나은 학교에 대한 정보를 찾아 나선다. 학기 중에도 현재 다니는 학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학교로 전학을 가는 예도 종종 볼 수 있다. "어떤 학교가 좋은 학교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각 개인이 처한 여러 환경과 필요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겠으나 많은 경우 인터넷에 공개된 학교별 평가와 시험 점수, 또는 해당 학교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참조하는 편이다. 이렇게  모아진 정보들을 통해 부모는 자신들의 자녀를 어떤 학교로 입학시킬지, 또는 어느 학교로 전학시킬지를 결정한다. 이러한 부모들의 결정이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보게 되는데 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좋은" 학교가 아이들에게는 "잘 맞지 않는" 학교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선택할 수 없고 학교 간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면 학부모들은 이러한 선택의 수고로움이 필요하지도 않겠지만 미국과 같이 부모에게 자녀들의 학교선택권이 있고 학교 간 학력 차이, 학교생활 환경에 차이가 크게 나는 곳에서 부모들의 이러한 노력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어느 부모인들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 하지 않을까. 특별히 다양한 인종과 문화,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미국과 같은 사회에서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지역사회, 이 지역사회 속의 학교에 자녀들을 참여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은 매우 활발하다. 

부모의 학교 선택권
미국에서도 좋은 학군에 속한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도 위장전입은 불법이지만 교장이 마음먹고 위장 전입한 학생들을 가려내기 전에는 이를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굳이 이런 탈법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더라도 학군 외의 학교로 전학을 하기 위한 방법은 있다. 학군 외의 학교로의 전학을 원할 경우 해당 학군 내 학교의 교장에게 허가를 구하고 학군 외의 학교로 지원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허가는 전적으로 학군 내 학교의 교장의 재량에 달려 있으나 불허할 이유가 마땅히 없다면 대개는 허가를 해주는 편이다. 물론 옮기고자 하는 학교에 학생을 받을 만한 자리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평판이 좋은 학교들은 전학 대기자들로 인해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학교 선택권은 학생들에게는 자신과 더 잘 맞는 학교를 고를 기회를 주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학교 간 운영이 차이가 큰 미국의 학교환경에서 자녀에게 도움이 되는 교육환경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은 교육에 관심이 많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가정에서 두드러져 이들이 모이는 학군의 학교들은 소위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학교들은 길 하나를 두고 학교 간 학업 성취도가 판이한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학교 간의 차이가 반드시 교사의 질에 의해 결정될 수 없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에 기인한다는 사실은 평판이 좋지 않거나 학력이 낮은 학교들을 단순한 논리로 비판하기 어렵게 만들고 그 해결책 또한 쉽지 않다. 평판이 좋지 못한 학교에 남겨지는 학생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다른 이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이들 학교에 남겨진 학생들의 부모들을 비난할 수도 없다. 소위 말하는 좋은 학교로 옮기기 위해서는 경제적, 시간적인 문제가 선행되기 때문인데 이를 감당해 낼 수 없는 학부모가 대부분이다. 좋은 학군에 당신들의 자녀를 보내지 못하는 부모들은 자신의 능력을 한탄하며 자식들에게 미안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과연 이것이 부모의 잘못일까? 문제는 고른 교육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책임이 먼저이고 학창 시절부터 분리되어 교육받고 함께 섞여 본 적이 없는 이들이 형성할 미래의 사회가 가져올 불안정성이다. 개인이 겪는 학교에서의 경험과 그로 인해 좌우될 인생의 어려움을, 이러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사회불안의 요인을 한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만 탓하기에는 국가는 지극히 무책임하다. 충분한 햇빛과 양분을 받은 식물을 그늘지고 마른 곳에서 자란 식물과 비교하고 이에 따라 평가를 달리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미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그 시작부터 분리와 차별이라는 깊고도 강한 쓴 뿌리와 공존해왔다. 이 쓴 뿌리는 여러 차례 걸쳐 다른 모양으로 이 사회에 경종을 울려왔지만 이 외침에 미국 사회가 얼마큼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왔는지는 의문스럽다. 현재 더욱 심화되어가는 학교 간의 분리를 미래의 또 다른 잠재적 갈등을 보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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