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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hwan Connor Jeon Jan 21. 2019

LA 통합교육구 교원노조  파업에 참여하며

교육 민영화의 환상과 폐해

2019년 1월 18일, Civic Center 앞에 모인 교사들

30년 만의 교사파업

미국에서 뉴욕주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교육구, LAUSD의 교원노조 UTLA의 30년 만의 교사파업이 2019년 1월 18일, 일주일째로 접어들었다. 파업 시작과 함께 남부 캘리포니아의 날씨로는 이례적인 4일 연속 폭우 때문에 파업 참가 교사들은 힘든 일주일을 보냈다. 1월 18일 금요일에는 모처럼 날씨가 개인 덕분에 더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가 참여한 활기찬 집회가 LA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열렸다.

RFK Community School 앞

UTLA 소속 교사들은 현 공교육이 당면한 여러 이슈들에 대해 피켓을 만들어 행진을 하고 다양한 구호를 외치며 학부모, 학생, 시민들의 이해와 참여를 호소했다.길거리를 지나는 많은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고 손을 흔들며 지지를 표했고 학부모와 시민단체들은 물과 음식, 핫팩 등을 기증하고 함께 행진하며  교원노조의 파업에 동참했다.

LA 교원 노조는 충분한 간호사, 상담사, 사서의 채용 및  6.5%의 임금인상, 학급당 학생수의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협상과 관련하여 노조의 요구가 임금인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일부 언론 보도와 본질을 호도하는 가짜뉴스는 이번 파업을 대하는 학부모나 시민들의 판단을 흐리고 있다.


차터스쿨은 공교육 민영화의 시작

표면적으로 이번 시위는 위에 기술한 이유들로 시작 되었으나 그 근본에는 차터스쿨이라 확장이 자리잡고 있다.  자율운영 학교인 차터스쿨은 학교운영에 있어는 교육구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특성있게 운영하면서 학교 운영 자금은 국가로 부터 지원 받는 형태이다. 모든 차터스쿨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차터스쿨은 특색있는 프로그램 덕에 교육에 관심이 높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기도 하고 이들 학교들은 주변 학교들에 비하여 높은 학업 성취도와 대학 진학률을 보인다. 이들 학교에 입학을 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입학 절차를 거쳐야 하기도 한다. 가끔씩 언론에는 교육에도 경쟁과 경영합리화가 필요한게 아니냐며 이들 다양한 형태의 학교들에 대해 지지를 하는 기사가 뜨기도 한다. 언뜻 보면 이러한 주장이 일리 있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교육이라는 매우 특수하고도 복잡,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에 단순한 경쟁의 논리를 들이 대거나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기존의 틀을 무작정 바꾸려고 하는 시도는 위험하기도 하고 그 부정적인 여파가 매우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한 번 결정되어 버리면 그것을 되돌리기는 상당한 사회적 비용과 시간이 소요 되므로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4대강 사업이나 민자 고속도로, 영국의 철도나 전기 공기업의 민영화, 미국의 의료 민영화 등의 사례 등이 이 어려움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치명적인 결과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차터스쿨은 시민들의 무지와 학부모의 이기심, 탐욕러운 자본의 이윤 무한 확장을 등에 업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확장일로에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학생 골라 받기

많은 차터스쿨은 입학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열이 있는 학부모가 이 학교들에 대한 정보를 찾아서 학교의 요구에 따라 자녀가 똑똑하고 재능이 있다는 것은 다양한 하고 지속적인 방법으로 증명하고, 수차례의 복잡한 미팅과 철차를 거친 다음에 어느 정도의 재정적인 기부를 약속하고 학부모가 학교 행사에 적극적인 참여를 할 수 있어야 입학이 가능한 형태이다. 이 필요충분조건을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은 한 마디로 교육에 관심이 매우 많고 재정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의 학생이 다닐 수 있는 학교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문서에는 명기되어 있지 않으나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비롯하여 시간적 여유가 없는 맞벌이 부모나 한 부모 자녀, 영어나 이러한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의 자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의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걸러진다. 이는 누구나 다 알지만 말하지 않는, 교묘하게 감추어진 부끄럽고 명백한 차별이다. 이렇게 가정으로 부터 지원을 잘 받을 수 있는, 재주 있고 똑똑한 학생들만을 골라서 받게 되면 이 학교의 시험 성적은 상승하고 양질의 대학으로의 입학률은 높아지는 반면 주변의 학교들의 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공교육 재정 악화

많은 차터스쿨은 학부모로 부터 받는 기부금에 더하여 교육구로 부터도 학교운영자금을 받아 학교를 운영한다. 미국에서 학생의 숫자는 학교 예산과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매일 출석 숫자에 따라 주정부에서 받는 학교 운영비가 좌우된다. 차터스쿨로 전학한 학생들이 많을 수록 공립학교 학생의 재학생수 감소로 이어지고 이러한 재정 감소는 공립학교의 간호사, 상담사, 사서, 예술관련 교사의 부족과 학급당 인원수 증가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공립학교의 질을 열심히 노력 해서 차터스쿨보다 더 좋게 만들면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교육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쏟기가 힘든 가정의 학생들, 재정적으로 시간적으로 학교 참여가 어려운 학부모의 자녀들, 언어와 사회 적응이 어려운 이민자 가정의 학생들, 장애로 인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재정과 지원이 절실하다. 학생 머릿수를 단편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예산 편성에 맹점이 있는 것이다. 이미 시작부터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오르막을 달려 성과는 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차터스쿨 목적은 아윤창출

누가 차터스쿨을 만들고 운영하는가? 미국에서의 차터스쿨의 역사는 사실 사립학교의 그것과 궤를 같이 한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철폐에 대한 각종 판결이 이어지면서 이에 불만이었던 주류층은 교외로 주거지를 옮기고 사립학교나 차터스쿨를 열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자식들이 다니는 이 학교에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지 않으면 오지 말라는 뜻이다. 이러한 차별적 시각에 더하여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도심속의 차터스쿨의 성장배경은 이를 설립, 운영하는 것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에도 미국의 백만장자들이 어떤 학교를 세우는데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부했다는 기사가 종종 전해진다. 기사에는 이러한 학교들이 얼마나 혁신적인 교육과정을 제공하는지, 교육환경은 얼마나 월등한지를 보여주고 시청자로 하여금 이러한 학교가 다른 곳에서도 설립되어야 한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TV 화면에 등장하는 이 학교들은 매우 이상적인 곳으로 소개되지만 그러한 풍경은 모든 차터스쿨에서 볼 수도 없을 뿐더러 몇몇의 학교들은 소위 "플랫폼"을 만들어 다른 학교에 이를 판매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소위 프랜차이즈 본사가 이윤을 창출하는 방법이다. 국가의 재정으로 사업을 설립, 운영하고 이와 관련한 이윤은 본인들이 가져간다. 한국의 사립 유치원 프렌차이즈  본사비리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이 이윤을 창출하는 방법 또한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 하다. 국민의 세금과 기여금이 결국은 이 학교를 설립한 억만장자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셈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공립학교의 어려움은 더욱 커져가고 어찌하기에는 너무 커져 버린 덩치가 되어버린 차터스쿨 프랜차이즈 들은 더욱 많은 자금을 국가로 부터, 국민으로 부터 요구하게 될 것이다. 무상이었던 공교육이 어느새 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몇 몇 억만장자들과 이들에 빌붙어 운영을 하며 이윤을 만들어 내는 운영진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변질되는 것이다. UTLA의 교사파업의 근본 이유는 바로 이들 차터스쿨의 확장에 있다. 기업의 지상과제는 이윤창출이다. 이미 기업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차터스쿨은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교사들의 열정과 바램과는 별개로 학생들은 그들의 이윤을 위해 존재하고 그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 희생이 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기업 운영에 필요한 하나의 요소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교육은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깨닫게 돕는 것

얼마전 한국은 사립유치원 운영 비리로 떠들썩 했다. 교육을 영리의 수단으로 보는 순간 교육 활동과 관련된 모든 것은 이윤창출이라는 미명 아래 희생되고 만다. 버스에 아이들이 갇혀도 확인할 사람이 없고 계란 두 개로 백여명의 먹을 국을 끓여도 어쩔 수가 없고 학생들을 위해서 쓰여야 할 학교 예산이 운영자의 명품구입이나 개인의 필요에 따라 유용 되어도 누구에게도 시원하게 책임 지울 수 없다. 지금 LA의 공립학교들은 부족한 간호사와 상담사, 적절하게 지원 받지 못하는 특수교육과 학급당 학생수 증가로 교육의 질 재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다. 똑똑하든 그렇지 않든, 부모가 재력이 있든 없든, 장애의 유무와는 상관 없이, 차별 받지 않는 이 작은 사회에서 즐겁고 안전하게 삶을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발현하도록 돕고 함께 사는 구성원을 존중하며 이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는 교육의 숭고한 가치, 이는 이윤창출이라는 기업의 가치와는 꽤 거리가 멀다. 이윤을 먼저 추구하는 교육기업에게 이 숭고한 가치를 빼앗겼을 때 초래되는 결과는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현재 로스앤젤레스의 UTLA 교원노조의 파업은 가야할 길이 매우 멀어 보인다. 이번 파업에서 내세운 요구조건이 다 받아들여진다고 하여도 이들 요구조건들의 근본원인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빈부격차와 자본주의의 원리가 절대적 가치로 여겨지는 미국. 이곳에서 공교육은 민영화의 기치를 내건 억만장자들의 파고를 넘어 숭고한 교육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내일, 1월 21일은 미국 흑인인권운동의 상징 MLK 기념일로 파업도 하루 쉰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인종차별의 높은 벽을 허무는 꿈을 꾸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 마틴루터킹으로 인해 미국은 그의 꿈에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부디, 기적과 같은 좋은 소식으로 학생들을 다시 교실에서 만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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