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를 보고
자주 인용되는 심리테스트 중에 그런게 있다. 무인도에 꼭 하나만 들고 갈 수 있다면 뭘 선택하시겠습니까. 칼, 담배, 핸드폰, 책, 반려동물. 보기는 그때 그때 달라지지만, 대략 저런 분류가 아니었나 싶다. 생존에 필요한 도구, 기호식품, 정서적 의지가 되는 존재 등등. 별 것도 아니지만 꽤나 진지해져서 칼이나 핸드폰을 고르곤 했었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하면서.
여기 현대판 생존게임이 있다. 영화 <소공녀>의 미소는 일용직 노동자로 가사도우미 일을 하면서 말 그대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 다른 사람의 집을 치워주고 일당 45000원을 받는 그녀는 일부는 방값으로, 일부는 머리가 하얗게 새는 것을 방지하는 약값에, 일부는 담배값으로 분산하여 사용한 후, 마지막으로 12000원짜리 위스키를 사서 마신다. 돈이 없어 전기도 켜지 않고 난방도 못하는 단칸방에 살면서, 하루에 45000원을 벌면서, 12000원짜리 위스키라니.
처음에는 현실감각보다 ‘소확행’을 중요시하는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젊은이상인가 싶었다. 그러다가 담배값이 오르고 방값이 올라 고민하던 그녀가, 위스키와 담배 대신 집을 포기하는 순간에는 이게 대체 뭐지 싶은 것이다. 담배와 술이 집보다 더 중요하다니. 도대체 정신이 있나 없나 하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영화 속에서도 미소는 종종 곤경에 처한다. 집도 없는 주제에 담배와 술을 포기 못한다며 타박을 듣고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쯤 되니 알 것 같았다. 사실 사람에게는 의, 식, 주, 로 상징되는 것 외에도, 흔히 생존을 위해 필수라고 일컬어지는 요소 이외에도 어쩌면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지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집 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친구들의 집에 신세를 지는 과정에서 모욕과 굴욕, 곤란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24시간 카페와 빨래방에서 노숙을 하고 거리를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와중에도 끝까지 담배와 술을 버리지 못하는 미소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끝까지 현실감각 없이 꿈 속에서 사는 인생일 수도 있겠으나.
이솜(은 마담 뺑덕에서 본 적이 있는데 연기를 잘 못한다고 생각해서 별로였으나 이 영화를 보고 좋아졌다)이 연기한 미소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라 오래도록 인상에 남을 것 같다. 예의 바르고 성실하면서 비굴하지 않은.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바닥의 바닥에서 생활하면서도 고귀함을 잃지 않는. 그런 미소를 보니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소공녀>인지 알 것 같았다. <미쓰백>도 그렇고 <소공녀>도 그렇고, 여성 감독이 여성에 대해 이야기한 영화들이 점점 늘어나서 기쁘다. 정말로.
별점 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