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혜 Jan 24. 2019

대중이 원하는 컨텐츠

<돌이킬 수 없는 약속>

카드뉴스로 책 줄거리를 요약해서 소개하는 방식 은 지금은 꽤 보편적으로 퍼졌지만 최초 시작은 리디북스의 ‘책 끝을 접다’였다. 책의 핵심 줄거리를 그림과 함께 요약해서 보여준 후 결말은 리디북스에서 사서 읽으라는 식으로 끝난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도 궁금해질 만큼 그 퀄리티가 뛰어났는데 소개된 책들이 대부분 온오프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갔던 것을 보면 마케팅 측면에서도 상당히 유의미한 효과가 있었으리라고 짐작한다. 리디북스는 처음 런칭하던 당시에는 솔직히 이 정도까지 성장할 줄 미처 몰랐는데, 여러모로 굉장히 영리한 회사인 것 같다.

그리고 ‘책 끝을 접다’를 통해서 지금까지 가장 수혜를 입은 책은 야쿠마루 가쿠의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 아닐까 한다. 작년부터 내내 베스트셀러에서 내려간 적이 없다. 어디까지나 뇌피셜이지만 이 책이 이 정도로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질 수 있었던 그 최초의 시작이 다름 아닌 ‘책 끝을 접다’가 아니었나 혼자 짐작하고 있다.

올해는 킬링타임용 책은 최대한 안 읽기로 결심했으나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읽어보았다. 역시나.....마케팅이 아니었으면 이 정도까지 유명해지기 어려웠을 책이다. 아이디어는 기발하고 소재는 흥미진진한데...

일단 주인공부터가 매우 설명충이다. 어이, 어떻게 된거야? 라는 20년 만에 만난 사람의 한 마디에 실은 말이지, 하며 그간의 사연을 몇 줄에 요약해서 들려준다. 중간중간 겹치게 되는 인물들과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듣는 사람들은 어엇! 그랬군! 하고 순식간에 납득한다. 범인 역시 책을 읽는 초반부에 바로 파악할 수 있을 만큼 허술하다. 중간중간 깔리는 복선(?)들은 너무나 빤해서 추리소설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바로 눈치챌 수 있다. 압권은 클라이맥스인데, 마치 희랍 비극처럼 등장인물이 한 자리에 차례차례 등장한다. 이 모든 사건은 20년 전 네 놈이 한 짓으로부터 시작되었지....기억 못 하나! 네 놈의 악행을!!! 하고 줄줄줄줄 꾸짖으면, 아니얏! 사실은.....! 하면서 다시 좔좔좔좔 변명을 하고, 그때 또다시 제삼자가 등장하여, 그 말이 맞습니다! 꾀꼴꾀꼴 동의 및 재청을 하는 형태다. 그러다가 일본 가족 드라마처럼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밝은 내일을 꿈꾸며 한 줄기 눈물을 흘리는 아름다운 마무리.

막판의 급전개는 정말이지 웃음을 터뜨릴 정도라서 어떤 의미로는 감동했는데, 그럼에도 이 소설이 가진 엄청난 장점이 있다. 일단 매우, 매우, 매우, 잘 읽힌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거침이 없다. 쭉쭉쭉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러니까 마케팅에서 일단 낚기만 하면 일정 수준의 재미는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추리소설을 읽을 때처럼 머리를 써야 할 필요도 없고 스릴러나 공포 소설을 읽을 때처럼 긴장을 할 필요도 없다. 장르가 장르이니만큼 적당한 자극이 동반된 상태로 편안함이 유지된다. 보통 칙스릴러나 가벼운 추리소설 류가 읽기 편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까지 잘 읽히는 소설은 또 오랜만이어서 어떤 의미로 놀라웠다. 마치 <외모지상주의>나 <복학왕>, <하이브> 같은 웹툰을 보는 느낌 하고도 비슷했으므로.

많은 이들이 대중에게 많이 소비되고, 쉽게 소비되는 이러한 류의 작품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그 나름 굉장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임성한의 드라마를 싸구려 막장이라고 우습게 여기지만, 싸구려 막장을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대중을 무시하는 컨텐츠와 예술가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이 이렇게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는 것은 컨텐츠 소비문화 관련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

매거진의 이전글 어쩔 수 없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